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Apr 27. 2020

탈출하고 싶다, 집

집순이가 외출 중독자가 된 이유

난 타고난 집순이다. 학창시절 친구들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좋았고, 연애할 때도 주말 이틀 중 하루만 데이트를 하고 하루는 반드시 집에 있었다. 직장 동료들이 퇴근 시간만 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나를 보며 집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냐고 궁금해 할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육아를 하는 요즘은 달라졌다. 어떻게든 외출을 하려고 핑곗거리만 찾는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평일에는 이웃집 개와 동네 산책을 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다. 이것으로는 부족하기에 다른 핑곗거리도 계속해서 탐색한다. 멀리 못 나가면 집 밖이라도 나간다. 마당에 풀을 뽑는다는 핑계로 집 안을 벗어난다. 풀 뽑는 걸 그렇게 싫어하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집 밖이 좋아졌는지를 생각해 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 안에 있으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이 없이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이유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 전에는 차를 타고 직장에 갔는데, 이제는 차를 타고 나가야 직장을 벗어날 수 있다. 집이 직장이 되고, 집 밖이 휴식처가 된 것이다.

  

물론 집 안에서 커피도 마시고, 쉬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쉰다고 그것이 진짜 휴식인가 말이다. 아무리 집안에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쉬어도 편하지가 않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의 먼지가,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가 눈에 밟힌다. 이건 쉬는 게 아니다. 내가 쉬려면 나의 고객님(아기)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나의 직장은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상사가 없으니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고객님(아기)이 몹시 귀엽고 사랑스럽다. 상사가 없고 고객이 사랑스러운 직장을 찾기는 아마 어려울 거다. 그런 점에서 참 복 받은 직장이긴 한데 단점이 너무 치명적이다. 24시간 풀타임 근무, 24시간 고객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눈치껏, 알아서 해야 한다. 아무리 장점이 커도 이 단점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외출을 꿈꾼다. 잠깐이라도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어서.     



집순이였던 나는 이렇게 외출 중독자가 되었다. 편안한 안식처였던 집은 이제 없다. 고객님(아기)이 있는 일거리 가득한 노동의 공간만 있을 뿐이다. 언제쯤 나의 안식처로서의 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날이 아득히 멀게만 보이니 더욱 씁쓸하다.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카페로, 공원으로 나와 있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그것이 남들 눈에는 편하게 놀고 먹는 맘충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잠깐이라도 일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걸 알겠다.  


누군가에게 집은 휴식하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노동의 장소, 일터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공간은 없다는 것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만큼 각기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무슨 핑계로 일터를 탈출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