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Sep 06. 2021

엄마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민정님께] 내 결핍이 아이를 망칠까 봐 두려워요.

민정님, 오랜만이에요. 2주에 한번 편지를 쓰기로 했는데 마감을 넘겨 이제야 편지를 씁니다. 모두가 하는 흔한 핑계를 대자면 그동안 좀 바빴어요.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12시에서 3시로 늦어졌는데 이상하게 더 바쁘더라고요.      


요즘 저는 아이를 돌보고, 어린이집 등원시킨 후엔 유아 발달에 관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촉감 놀이 재료를 사고, 아이가 스스로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을 새롭게 구성하고, 다시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잠들면 다시 언어촉진이나 감각통합을 위한 영상을 찾아보면서 하루를 지냈어요. 카톡 확인할 시간도 없더라고요.     

냉장고 칠판에 이런 걸 적어놓고 지냈어요.


지금의 저를 설명하는 단어는 “엄마”예요     


민정님이 ‘이것 없이는 나를 말할 수 없는 단어’가 뭐냐고 물으셨는데 이전의 저였다면 ‘책과 커피’라고 했을 거예요. 저는 커피를 안 마시면 평화가 없고, 책 이 없으면 재미가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최근의 저를 설명하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엄마”예요. 민정님은 우리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여자’, ‘엄마’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저항해보자고 했는데 이런 답을 할 수밖에 없어 미안해요.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신 지도, 제 책을 본 지도 3주 정도 된 것 같네요.      


아이가 22개월인데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았어요. 이제 슬 걱정이 되려고 해서 알아보다 보니 언어만 늦은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발달이 느리고, 촉감이 예민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껏 아이가 관심이 없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발달이 느려서 못하는 것이거나 촉감이 예민해서 싫어하는 거였더군요.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그동안 제 육아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의 육아에서 가장 크게 차지한 질문은 ‘아이가 상처 받으면 어쩌지?’와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 두 가지였어요. 이 두려움에 휩싸여서 아이의 요구를 전적으로 들어주고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전전긍긍했어요. 그러면서 아이는 늘 행복하고 나는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죠.     


저는 뭐든 참는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에 저는 가지고 싶은 걸 솔직하게 말해 본 적이 없어요.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항상 집안 형편을 걱정했고, 선물을 골라보라고 하면 그중에 제일 싸 보이는 걸 골랐어요. 수퍼마켓에 들어가서 과자를 하나 사도 제일 싼 것만 골랐으니까요. 물건에 가격이 적혀 있지 않은 게 참 싫었어요. 가격이 붙어 있으면 저렴한 것들 중에서라도 고를 수 있는데 가격이 없으면 뭐가 제일 싼 지만 생각해야 해서 아예 고를 수가 없었거든요.

     

전 수퍼마켓에서 눈치를 보는 아이였어요.

저도 가지고 싶은 장난감, 먹고 싶은 과자가 있었는데 한 번도 말을 못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유행하는 옷이나 가방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대학 진학 때도 눈치껏 형편에 맞춰 근처 국립대에 갔죠. 제 아이는 저처럼 크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마음껏 말했으면 했고, 뭐든 참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했어요.      


피곤해서 누워 있는데 같이 놀자고 조르는 아이의 칭얼대는 목소리를 들으면 자주 거절당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어요. 목소리만 조금 크게 해도 울먹거리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주눅 들어 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얼른 달래줬어요. 촉감에 예민한 아이는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안거나 손을 잡으면 밀어내고 손을 뿌리쳐요. 지금은 촉감이 예민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몰랐을 때는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이 아이가 지금은 아니라도 커서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지.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어요.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안 돼.”라는 말은 될 수 있도록 안 했고, 화를 내는 일도 몇 번 없었어요. 동생은 이런 저를 보면서 리모컨이라며 놀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전 아이를 잘 키우고 있고, 아이는 행복하리라 굳게 믿었어요.     


제가 아이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이런 저의 육아 태도가 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의 모든 필요와 욕구를 알아서 충족시켜 주니 말을 배울 필요도 없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할 필요도 없는 거죠. 그리고 제한 없이 뭐든 다 허용해주니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오히려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주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정신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하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눈으로   있어야 합니다. 행복은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랑 나랑 우리 가족이 자주 웃는 거예요. 즐거운 분위기가 많으면 즐거운 감정을 느낄  있는 기초 설계도가 그려집니다. 그다음에 좌절과 불쾌한 일들을 겪어야 합니다. 겪고 견디고 겪고 견디고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즐거울  즐거울  있고 불쾌할   견뎌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가졌든  배우든  하든 가장 행복할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EBS 육아학교)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좌절과 불쾌한 일을 제가 대신 해결해주려 했어요. 좌절이 오려고 하면 달려가서 온몸으로 막고, 행여 불쾌한 일이 생길까 봐 안절부절못했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아이의 성장에도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거예요. 아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건 순전히 저의 착각이었어요.     


저의 육아 방식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한동안 괴로웠어요. 내 결핍 때문에 아이가 나약하고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요. 부모가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 자리인지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지금은 아이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허용적으로 하되 제한을 정해 규칙을 지키도록 하고 있어요. 옷 입기, 벗기, 빨래 바구니에 빨래 넣기, 신발 벗기, 간식 준비, 세수, 로션 바르기 등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만 주고요. 좋아하는 배도라지 음료도 달라고 할 때마다 주던 걸 아침에 한 번만 주는 식으로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밌어하고 성취감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이 영향인지 일주일 사이에 단어도 부쩍 늘었어요. 그 전엔 언어 모방을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뭐든 따라 하려고 하네요. 아이 비위를 맞출 때보다 아이와의 유대도 더 좋아진 느낌이고요.

     

내 결핍이 아이를 망칠까 봐 두려워요.     


그렇다고 모든 고민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고 제 육아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겠죠. 저의 결핍은 어떤 방식으로든 불쑥불쑥 고개를 들 테니까요. 저의 문제가, 결핍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두려워요.      


영화 <세 자매>에는 막내 장윤주가 알코올 중독자 X라이로 나오는데요. 하루는 둘째 언니 문소리에게 전화를 해서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해요. “ 언니, 엄마는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좀 가르쳐줘라. 난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 전 이 대사가 잊히지 않아요. 아이 키우는 게 힘들 때마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때가 많아요.      


혹시 민정님은 알아요? 엄마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나 좀 가르쳐줄래요?


<세자매>에서 장윤주의 대사가 잊히지 않아요


2021.9.6.  

가을 장마 속에서 은진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사유를 시작했던 최초의 기억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