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Nov 23. 2021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해

외모 강박은 극복되었을까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해. 얼굴이 예쁘다면 좋을 텐데. 난 또 예쁘단 너의 말에. 예쁘단 너의 말에 한참을 거울 앞에서 헤맸어. ... 나에겐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 깊어. 네게만 보여줄게.     

장연주의 노래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해> 중

대학교 때 노래방이 한참 유행이었는데 갈 때마다 부르던 곡 중 하나가 장연주의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해’였다. 멜로디가 좋고 재밌어서 부른다고 애써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사에 공감이 돼서 이 노래를 좋아했다. 남들 앞에서는 내가 송혜교라느니 따위의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마음속엔 늘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가끔 만나는 이모들은 나를 보고 어릴 땐 예뻤는데 못생겨졌다고 또는 살이 쪘다고 말하곤 했다. 이모들을 몹시 싫어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어릴 때 예뻤다는 말은 칭찬인데 나는 지금도 아주 싫어한다. 그 말속에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예뻤는데 왜 모르고 살았지?


지금 옛날 사진들을 보면 참 예쁘다. 여드름이 많을 때도, 다이어트를 해서 51킬로일 때도, 결혼하고 62킬로가 됐을 때도 다 눈이 부시게 예쁘다. 사진을 보다가 자주 억울해진다.

“아니, 이렇게 예뻤는데 왜 난 그걸 모르고 살았지?”     


예전에는 예뻤던 것 같은데

여드름이 있어서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가슴이 작아서 볼품없다고 생각했고, 50킬로가 넘어서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60킬로가 넘어서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빛나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외모에 신경 쓰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 시간과 힘이, 내 자신이 너무 아깝다.    

  

고등학교 수능이 끝나고 시작된 다이어트를 쉰 적이 없었다. 365일, ‘다이어트해야 되는데’를 머리와 입에 달고 살았다. 다이어트에 가장 성공했을 때가 51킬로였다. 출근 전에 수영 1시간, 퇴근 후에는 헬스 2시간 , 덴마크 다이어트식을 먹고 만든 몸무게였다. 귤이 너무 먹고 싶은데 살이 찔 것 같아서 3일을 고민하다가 반쪽을 먹었다.    

  

이 죽일 놈의 다이어트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과자를 먹는데도 저렇게 날씬하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먹으니까 살이 찌지’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안 보이고 음식과 몸만 보였다. 생리불순이나 탈모는 그러려니 했지만, 살이 더 찔까 봐 불안해서 손이 떨리는 지경에 이르러서 그 다이어트를 그만뒀다.    

  

다이어트 보조제를 구입하기도 했고, 여드름으로 고생을 해서 안 써본 화장품이 없다. 사각턱이 콤플렉스라 보톡스도 맞았다. 여드름 흉터를 없애려고 제법 센 피부과 시술을 받아 몇 달 동안 햇빛을 피하면서 의료용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니기도 했다. 가슴이 커지는 크림도 발라봤고 뱃살이 빠진다는 시트도 붙여봤다. 아이라인 그리는 것이 너무 귀찮지만 안 그릴 수는 없어서 반영구 문신을 했고 지금도 남아 있다.     


화장품을 모두 버렸지만..


외모에 대해 신경 쓰고 이렇게 다양한 시술을 하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스스로가 멋있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관계없이 자신감 넘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조금씩 시도하던 어느 날 책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고 화장품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금은 화장을 안 한지 5년째이고, 몸무게는 63킬로이고, 긴 머리에서 단발머리가 된 지 오래다.     

 

“화장품을 버리고 난 후 지금은 외모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항상 자신감이 넘친답니다.”로 끝나는 행복한 결말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않다. 외모에 신경을 썼던 그때에는 그때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 지금은 지금대로 여전히 난 자신이 없다. 예전 사진 속의 나는 날씬하고 예쁜데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살이 쪘고, 예쁘지 않은 것 같다.      


예쁘게 보이고 싶다.

예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외모에 대한 기준은 사회가 주입한 것이라는 걸 책으로 읽어서 알겠는데 머리로 아는 것과 욕망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지금도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     


예쁜 여자 말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특정한 사람- 남편이나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 보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싶은 것 같다. 똑똑하고, 매력적이고, 아이를 낳았어도 여전히 날씬하고 예쁜 여자가 되어 남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세상을 욕하면서도 내 속에는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이 드글드글하다.     


요즘 사진 속의 나는 몸집이 너무 크고, 피부가 칙칙하고, 늙었다. 사진을 잘 안 찍히려 하게 된다. 지금의 나도 시간이 지나서 본다면 예쁜 모습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다. 사실은 살을 10킬로 정도 빼고 싶고, 그렇게만 하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이어트할 여유가 안 될 뿐이다.     


예전에는 예쁜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왕이면 예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예쁜 외모로 보이고 싶은 그 마음과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살이 찌면 찐 대로, 빠지면 빠진 대로, 손을 손으로, 배를 배로 편안하게 보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멋있고 편안하고 좋은 사람으로 늙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만 좋아하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