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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Jan 11. 2022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다네요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민정님을 사진관에서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꿈을 꿨어요. 민정님과 저와 엄마가 나오는 꿈이었어요. 전 그냥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고, 민정님과 엄마는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민정님이 엄마 눈썹을 다듬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는 내심 좋아하며 눈썹을 내어주고 민정님이 정성스럽게 눈썹 칼로 엄마 눈썹을 다듬고. 두 사람이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그런 모습을 제가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깼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민정님께 엄마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이런 꿈을 꾼 걸까요? 꿈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제가 민정님께 고마웠고, 꿈이지만 참 따뜻했어요.


우리는 어느새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가족과 함께 꿈에도 등장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어느새 말입니다. 민정님과 만나고 돌아와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민정님을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요. 사주로 무토인 데다 재밌기까지 해서 좋아한다나요.(아시죠? 남편은 사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인 거.) 남편이 말한 이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저의 마음을 합당하다고 승인받은 느낌이랄까요. 남편의 말이 나쁘지 않게 들렸어요.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어요. ‘민정님은 참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찰나로 기록해주고, 그 과정을 추억으로 만들어주시는구나.’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라는 결과물이 있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고, 또 사진을 찍는 과정 때문에 그 순간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이번에 민정님 덕분에 또 하나의 행복한 기록과 추억을 남겼어요. 그리고 그 추억 속에 민정님도 같이 있어서 좋습니다. 이제 사진을 볼 때마다, 2021년 12월을 떠올릴 때마다 민정님도 같이 떠오르게 되겠죠. 그게 참 좋네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민정님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만들었다는 것이요.     


민정님 덕분에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어요.


어린이집이 폐원을 하게 됐어요


요즘 전 3월 복직을 앞두고 마음만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어요. 3년 만에 복직을 하려니 불안함이 생겨서 가끔은 숨이 잘 안 쉬어질 때도 있고, 떨어지는 꿈도 종종 꾸며 지냅니다. 2007년에 교사로 임용돼서 2018년까지 일하다가 휴직을 했고 이번에 복직을 하는 건데요. 3년이나 쉬었는데 예전처럼 할 수 있을지, 이제는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수업을 잘하고 싶은데 감이 살아날지 기타 등등 걱정만 많습니다.       


이 와중에 아이 어린이집이 재정 문제로 폐원을 하게 돼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어요. 아이를 미리 적응시킬 거라고 일찍 보낸 지금의 어린이집과 이별을 하고,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아 새로 적응을 시켜야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 당황스럽고, 아이도 저희 부부도 너무 좋아했던 어린이집과 선생님이었기에 이별이 쉽지 않네요.     

 

사실 지금은 복직보다 아이의 현재 어린이집과의 이별에 더 마음을 쓰고 있어요. 생각보다 더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1월까지만 다니고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길 생각인데 계속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느낌입니다.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기만 한데 저는 작별하는 날이 두렵기만 하네요.     


어린이집을 처음 보낼 때 걱정을 많이 하면서 보냈고, 적응 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 과정에서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원장 선생님, 조리사님, 운전기사님 모든 분들이 매일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환대해주셨고, 반 친구들도 생일이 제일 늦은 아이를 많이 챙겨줬어요. 등원할 때 아이를 반기며 환하게 웃어주는 분들을 보면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었어요. 모든 것이 너무 고마운데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나 봐요.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이별은 힘드네요


최근의 저에게는 이별이 많아요. 좋아하던 동네 빵집의 사장님이 멀리 이사를 가셨고, 아기 때부터 지켜봤고 우리 집에도 여러 번 왔었던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어린이집과도 이별을 하게 됐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보면 하나같이 사소한 이별일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다 쉽지만은 않네요. 허무하기도 하고 다시는 이별이 힘들지 않게 아무것에도 정을 안 주고 싶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최은영의 <밝은밤>을 떠올려요. 소설 속에서 새비가 죽기 전에 아픈 몸으로 삼천이를 찾아왔을 때 나눈 대화를 생각해요. 이별이 아쉽다는 마음 대신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될 때까지 되뇌어보려고요.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디 않아.     

최은영, <밝은 밤>


자연스러운 감정에도 ‘과하지 않나’, ‘위선은 아닌가’ 하며 늘 검열하는 저에게 ‘속상하다’는 한마디로 다할 수 없는 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습니다. 부끄러운 것도 말할 수 있는 민정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찾아갔을 때 환대해주셔서, 요즘 어떤 마음이냐고 물어봐주셔서, 서신을 계속 이어가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2022.1.11

이제 마흔이 된 친구 은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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