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by 윤서


‘남자친구’라는 말이 이렇게 낯설 수 있는 단어였던가

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참 자연스럽게 나오던 단어였는데 엄마의 남자친구라니 무언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든다.


‘너도 눈치챘지? 엄마 남자친구 있는 거’

눈치챈 적 없다. 실은 그렇다기 보단 에이 설마 하면서 온 신경을 회피했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자주 약속에 나갔다. 술은 입에도 안 대던 사람이 종종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들어왔다. 혼자 넓은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보다 바깥세상에 나가는 게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을 나가게 된다면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이 됐었는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그 자리를 무뚝뚝한 딸이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어쩌면 딸으로서 나의 책임을,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그걸 핑계로 덜어내려 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게에 묻지 못했다. 누구를 만나는 건지,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아빠가 돌아가시고 3년 동안 엄마와 나의 대화는 현저히 줄었다. 돌아가시기 전 서너 개월은 나 혼자 집에서 생활했으니, 햇수로는 거의 4년이 되어간다. 나 때문에 엄마의 외로움이 커졌던 건 아닐까. 하지만 나도 아빠를 잃었는데 -라고 생각이 이어지다가 나는 참 어른이 되기엔 한참 멀었구나 나를 또 꾸짖게 된다.


여하튼 나와 엄마의 소통의 부재로 뿌옇게 가려졌던 존재가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한 순간에 뒤집어 버렸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해야 할 것들까지 떠넘겼었는데. 분명 머리로는 축하할 일인데, 엄마의 행복을 빌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 나왔다. 엄마의 ‘걱정하지 마. 밥 먹고 카페 가고 그게 다야. 더 이상은 안 할 거야.‘라는 말에 ‘아니야, 엄마. 이제 우리 신경은 쓰지 말고 엄마 마음 가는 대로 해.’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무슨 걱정이야.’ 이야기하며 소녀처럼 자기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엄마에게 대충 반응을 해주고 방으로 급하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 수 없는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도 조금은 느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또 미안해진다. 서른이 넘은 나는 여전히 나밖에 모르는 철부지다.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은 눈도 퉁퉁 붓고 엉망이었다. 엉망인 게 꼭 외관만은 아닌 것 같다. 초등학생인 나와 중학생인 오빠를 두고 아빠의 병시중을 들러 병원실 생활을 했던 것은 엄마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엄마는 그걸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병원실 생활을 엄마는 몇 번이고 더 했다. 라꾸라꾸 침대에서 며칠, 몇 달을 보내며 엄마의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멋있었고, 엄마와 아빠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 아빠는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건 제쳐두고 마지막 밤까지 딸의 밤길 운전을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아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던 때가 없었다. 부모님이 내게 주셨던 만큼의 사랑을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없을 것 같아 아이가 생기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가슴이 콕콕 찔렸나 보다.

종종 누군가 별생각 없이 아빠 관련한 이야기를 물을 때면, 여전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면 더 나아가서 나는 여전히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는데, 엄마는 그리움의 우물에서 헤엄쳐 나왔다는 게 배신감을 들게 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스스로 헤엄쳐 나온 것을 택한 건 엄마고, 그 우물 안에 갇혀 괜찮은 척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길 선택한 건 나다. (그런데 사실 엄마가 그런 마음을 떨쳐냈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내 오감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쌓여 30년을 넘게 살아온 지금도, 그 이전에도, 내 인생에서 늘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건 늘 조심스럽고 내 속을 내비치는 건 참 어렵다. 그래서 답답함에 가끔 두서없이 글을 쓰는 거기도 하고. 어찌 됐든 뭐가 됐든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것이 가족인지라 가족 관계가 참 어렵다. 나는 여전히 엉망인 딸인 것 같은데, 엉망인 딸이 그럴듯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짓고 튼튼히 쌓아 올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계속 아빠의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로 채우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많은 나 자신이 너무너무 싫어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뭐. 엄마는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 마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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