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과 4학년 그리고 나
3년 1,095일 26,380시간 1,576,800분
모두 같은 시간을 표현하지만, 안겨주는 느낌이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분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시간 단위로, 일 단위로, 년 단위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2021년 3월, 나는 1학년 5반 교실에서 24명 어린이들의 첫 시작을 함께 하였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동그란 눈을 하고서는 나에게 실내화 주머니는 어디에 놓는지, 가방은 어떻게 거는지, 겉옷은 벗어도 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하던 아이들이었다. 저학년이 처음이었던 나에겐 아이들이 ‘어린이’보다도 ‘유아’에 더 가까워 보였다. 10명도 되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해 온 이 어린이들은 24명과의 단체 생활이 낯설었을 거다.
이제 막 태어난 지 10년도 안된 어린이들은 자신의 본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교육 기관이자 사회화 기관이 아닌가? 이 아이들을 사회화시켜야 했다. 거의 자기중심적 사고만 가능한 어린이들에게 이타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배워온 건지, 친구와 갈등이 있어 사과할 때면 하나 같이 친구의 한쪽 팔을 위에서 아래로 쓸며 기계적으로 ‘미안해’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사과를 받은 아이도 기계처럼 ‘괜찮아’ 혹은 ‘나도 미안해’라고 대답해 준다. 어린이들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사회화를 시작했다. 가끔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자기 잘못은 잊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2024년 2월, 나는 3년 전에 보았던 그 아이들을 4학년 교실에서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1년을 함께 할 아이들이 적혀 있는 운명의 종이를 쭉 훑어보았다.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길했다. 다른 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름이 익숙한 경우, 대개는 많은 사건 사고에 연루되어 있었던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학급의 모범적인 어린이보다는, 학교 생활을 다이내믹하게 하는 어린이가 인상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불안해도 어쩌겠는가. 운명은 이미 정해졌는 걸.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 아이들을 맞이하였다. 4학년이 된 어린이들의 처음은 아닌 첫인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하기 바빴던 아이들이 나의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서 척척 해야 할 일을 찾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닌가.
3년 전, 2반 선생님을 매일 골머리를 앓게 했던 G군은 누가 봐도 회장감인 모범적인 어린이가 되었다. 실제로 우리 반의 학급 회장이기도 하다. 가끔 행정실 선생님들께서도 참 똘똘하다며 칭찬을 할 정도이다.
우리 반 학급 부회장인 M양은 3년 전, 연구실에서 매일 울부짖는 모습으로 만났었던 어린이다. 선생님이 되려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가 50대 선생님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울부짖기는커녕, 알림장에 확인 도장만 찍어줘도 밝은 미소로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모범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3년 전에도 나와 함께 했던 N군은 여전히 해맑은 장난꾸러기이다. 그래도 그간 학교 생활이 누적되었는지 눈치가 많이 늘었다. 여전히 꾸러기 같이 행동하지만, 모범 대답이 늘었달까? 그런 모습 속에 선생님의 미움, 혹은 그저 혼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투명히 보여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아이이다.
아이들은 키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성장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니, 나는 3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때에 비해 더 노련하게 수업 시간과 일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요령만 늘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흘러간 3년과 아이들에게 흘러간 3년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어디선가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은 줄고 익숙함이 늘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겐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만 흘러가는지. 올해는 조금 천천히 흘러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