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AI 시대다. AI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AI는 학습 과정에서 ‘창발성’이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AI의 창발성이 AI 사회의 다음 지평을 열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창발성이 뭐냐고 질문한다. 여기부터 의사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가 듣는 사람에게 전달 안 되면 사고다.
AI의 창발성은 인간이 설정하지 않은 새로운 기능을 AI가 발휘하는 현상이다. 인간이 그렇듯이 AI도 학습 양이 축적되면 갑자기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 예를 들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AI는 인간이 접근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오래전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우리나라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길 때도 그랬다. 이렇게 풀어 설명해도 창발성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눈떠보니 선진국>과 <AI 강의 2025>의 저자, 박태웅은 '창발성'을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으로 표현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지를 묻는다고 한다. 그 결과로 질문 단계가 줄어들고, 내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의사소통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 깊어지고 핵심에 다가선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지금은 지식이 핵심 자원인 지식사회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지식을 활용하여 일의 결과를 산출하는 지식노동자이다. 고도화된 지식사회의 인재상은 효과적 지식노동자, 고성과자(High Performer), 프로페셔널, 효과적 리더, 효과적 경영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 단어의 뜻을 묻는다. 여기부터 의사소통 문제가 생긴다. 단어의 뜻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충분하지 않고, 장황하게 설명하면 듣기 힘들어한다. 결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듣는 사람에게 전달이 안 된다.
물론 새로운 단어나 개념이 생기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이 전달 안 되면 의미가 없다. 나는 지식노동자의 자기 경영을 주제로 하는 수업에서 지식사회의 인재상으로 쓰이는 복수의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묶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더는 설명이 필요 없어 소통에 문제가 없고, 현대 사회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언젠가부터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말의 ‘있어 보인다’와 영어의 ‘ability(능력)’가 결합한 말이다. 있어빌리티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있어 보이는 것과 같이 허세를 부리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현실과 상관없이 타인의 시선에서 멋있어 보이거나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반대로 없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SNS는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있어빌리티는 단순한 허세라기보다는 기술이 발전한 사회의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은 다양하다. 돈이 많아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있고, 키가 크고 몸이 좋아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남들보다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높은 지식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 흔히 학자, 의사, 법률가, 회계사, 엔지니어 등 전문가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전문 용어나 외국어를 쓰면서 있어빌리티를 누린다.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표현을 써서 전달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본인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참 없어 보인다.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라면 상대가 알아 들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방법을 바꾸어 가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게 훨씬 있어 보인다,
있어 보이는 행동을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다. 만일 적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다면 세상 어리석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