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잔

무대가 돼

by 오은영


비어있는 잔


이미 비어있는 잔 위는
무대가 돼

밝히는 불빛 하나 없이
피어오른 연기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즐겁게 춤을 추고 연기해

관심이 없는 잔과
그저 신나는 연기들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사라지고
그리고 잔은 여전히 관심이 없어

무대가 돼


이 작품은 스스로 빛나고 즐기는 존재와 무관심한 존재 사이의 분위기를 잔과 연기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미 비어 있는 잔 위는 무대가 돼”

누군가가 다 마시고 나서 잔은 비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이죠. 그런데 잔향이 남아있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밝히는 불빛 하나 없이 피어오른 연기”

관객의 시선도 불빛도 하나 없이 연기는 스스로 피어납니다.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아니면 오히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마주 보더니 즐겁게 춤을 추고 연기해”

무대 위 연기들은 잔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봅니다. 외에는 큰 흥미가 없고 자신들만의 세상이 안에서 추는 춤과 연기를 통해 그들의 즐거움이 완성됩니다.

“관심이 없는 잔과 그저 신나는 연기들”

하지만 잔은 관심이 없습니다. 속이 비어서 깨끗하지도 않고, 자신을 어서 씻겨주지도 않고, 하물며 잔은 연기들과 함께 춤을 출수도 없습니다. 끝까지 신나는 연기들과 달리 끝까지 무심한 잔의 대비는 분명해지고 끝내 교차하지 않습니다.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사라지고 그리고 잔은 여전히 관심이 없어”

연기들은 최선을 다해 ‘멋진 연기’를 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잔은 그대로 있지요.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화려하게 빛나지만 흔적 없이, 누군가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고 사라진 연기
즐겁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덤덤하게 놓인 잔 하나.

작가의 이전글거슬러 올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