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요정이 지나간 자리》

《흔들릴 필요가 없는》

by 오은영

《얇은 요정이 지나간 자리》

약하게 약 올리는 얇은 요정이
스치고 나잖아?

그럼 잎은 고개를 숙여
잎은 지금 매우 지쳤다는 거야

잎지기는 어서 달려가서
얇은 요정을 잡으려 했지만

얇은 요정은 재빨리 사라져서
잎지기는 고개 숙인 잎을 만져주고 있어

《흔들릴 필요가 없는》

이 시는 지친 마음에 닿은 아주 작은 자극이 어떻게 치유로 이어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첫 구절에 등장하는 ‘약하게 약 올리는 얇은 요정’은 가벼운 바람처럼 스치듯 자극을 주고 떠나는 존재입니다. 요정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장난이며 어떠한 악의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잎’에게는 그 가벼움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될 수 있지요.

이것은 우리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무심히 흘린 한마디에 상처받거나, 그로 인해 관계가 어긋나는 순간들과도 닮아 있습니다. 시 속의 잎 또한 요정의 장난에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잎’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피곤하고 지친 마음을 상징합니다. 요정에게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도 잎은 금세 고개를 숙여버리지요. 이는 잎이 이미 오래전부터 힘겨운 시간을 버텨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때 지친 잎을 지켜주려는 ‘잎지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잎지기는 금세 사라지는 얇고 가벼운 요정을 붙잡는 데 실패하지요. 이는 요정이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감정(말, 혹은 타인의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잎지기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건 너를 상처낼 만한 게 아니야”라고 말하듯 잎을 어루만져 달래줍니다.

이 시는 섬세한 감정의 세계를 그립니다. 작지만 예민한 자극이 지친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더라도, 그것은 사실 흔들릴 가치조차 없는, 말 그대로 지나가는 한 순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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