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어

무엇 하나 남는 게 없잖아

by 오은영


결국 이럴 줄 알았어

한없이 작아진
모자 하나와

도망치듯이
흐르는 조각들

흐르다 못해
이들도 도망갈까

꽉 다물려고 하는데
자꾸만 열어지는 입

무엇 하나
남는 게 없잖아


이 시는 붙잡으려 해도 계속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무력감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결국 이럴 줄 알았어”

체념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 짧은 말속에 화자는 이미 이러한 결말을 예상했지요.

“한없이 작아진 모자 하나와”

화자의 곁에는 작아진 모자하 나만이 남아있습니다 화자에게 너무나 작은 모자. 모자에 붙어있던 화려한 조각들은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도망치듯이 흐르는 조각들”

모자를 꾸며주던, 화자를 멋지게 만들어주었던 화려한 조각들은 더 이상 모자에 붙어있지 않고 흐릅니다.

“흐르다 못해 이들도 도망갈까”

모자와 화자는 점점 더 초라해집니다. 그리고 화자는 이 모든 게 더 가속될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꽉 다물려고 하는데 자꾸만 열어지는 입”

이 불안함을 말하지 않으려 해도 새어 나오려 합니다. 두렵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두렵다는 감정이 나오는 걸까요? 자신을 통제하려는 의지조차 실패합니다.

“무엇 하나 남는 게 없잖아”

결국 남는 건 없습니다. 화려했던 모자와 자신의 모습은 이제 없습니다. 그 모든 게 바닥이 드러납니다.

이 시는 과거의 영광, 성공, 행복... 그 모든 것들의 상실이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을 화자와 모자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아진 모자와 흘러가는 조각들 그리고 닫으려 해도 열리는 입과 감정은 결국 붙잡을 수 없음을 나타내지요. 그러고 나서는 슬픔보다 더 깊은 감정인 허무와 무력감으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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