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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Sep 02. 2020

섬기는 사람들 (2)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보고 듣고 말하기 #25

한국, 노스탤지어: 정상국가를 바란다     

「미스 프레지던트」(김재환, 2017)는 근래 나온 다큐멘터리 중, 한국적 노스탤지어를 다룬 얼마 안 되는 작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다룬 이 작품은 제목부터 독특하다. 일차원적으로 영화의 제목에서 ‘미스’는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호칭하는 단어인 Miss로 받아들여지지만, 영화 독해에 따라 실책을 뜻하는 Miss로 읽힐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중의적인 제목은 '박근혜', 그리고 '박정희’라는 두 인간에 대해 상반되는 태도를 잘 드러낸다. 이러한 점은 영화 초반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동생들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다가 소나무와 물에 비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모습을 비추는 편집을 예로 들 수 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단유필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 어떤 부분을 잊기로 한 사람들이 만든 매개체이다. 그의 동상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어떤 이들은 동생 아래에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박정를 본받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와 함께 떠나보낸 자신의 청춘을 되돌아볼지도 모른다. 동상은 그런 존재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기반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기대고 있는 그는 현신(現身)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나 다름없다. 영화 서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 모습에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등장하는 것은 이 부녀를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의 심리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기능을 한다. 


영화는 자신을 스스로 ’ 선비’라고 칭하는 남성 노인을 시작으로 박근혜와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지지자들의 행동과 언어를 충실히 비춘다. 여러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현재 시점과 교차하여 등장하는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의 영상이 나오는데, 이는 인물들의 자아가 어느 시점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성 노인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또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에 사배(四拜)하며 자신이 오늘 하고자 하는 바를 말씀드린 뒤 안녕을 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께도 마찬가지로 예를 다한다. 대통령은 임금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노인의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기괴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영화는 그런 그의 태도를 조롱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관조할 따름이다. 바로 이 지점이 「미스 프레지던트」의 미덕이다. 


남성 노인은 고속버스를 타고 잠시 잠에 빠진다. 영화는 흑백으로 바뀌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노인의 잠든 얼굴과 교차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에 참여한 박정희의 모습을 비춘다. 쭉 뻗은 길을 따라가는 박정희의 모습을 비추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다시금 노인의 뒤통수를 보여준다. 마치 노인이 꿈이라도 꾼 것처럼. 어쩌면 정말 노인은 박정희가 나오는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관객은 알 수 없다. 뒤통수에는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단유필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이들의 진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한다. 식당을 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자. 중년 남성은 소파에 앉아 젊은 시절 울산 공업단지 기공식에 갔던 일화를 말한다. 그는 당시 박정희가 투스타 장군이었다고 말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때부터 맹목적으로 좋아했다고 말한다. 한 시대를 보내온 이들은 자꾸만 그 시절을 정의하고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 시절의 고난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역경을 하나의 서사로 구축하기 위해 박정희라는 문제적 인간을 중심축으로써 호출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방향을 같이한다. 박정희 일가에 대해 가족 같다고 말하는 남성 노인의 표정은 지극히 진실되어,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다. 노스탤지어는 이렇게 형성된다.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거대한 집단이나 위대한 인물의 서사에 의탁하며 탄생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맹목적 노스탤지어를 비판하기 위해 그 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문받거나 탄압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추억하는 ‘그 시절’이 마냥 부정당한다고 느낄수록 더더욱 ‘그때 그 사람들’을 추앙할 것이다. 그들을 태극기 부대나 박사모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해부하려 한다면 그들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를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미스 프레지던트」는 그 지난한 일을 묵묵히 해낸 영화이다.


영화 <애국청년 변희재> 스틸컷 ⓒ노네임필름


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와 궤를 함께하는 작품으로는 강의석 감독의 「애국청년 변희재」(강의석, 2017)가 있다. 「애국청년 변희재」는 중장년층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변희재를 위시한 ‘젊은 보수’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상국가 담론과 그 심리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영화이다. 요컨대 영화는 이 젊은 보수들은 기성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승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자신들만의 정상국가 담론을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비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감독의 포지션이다. 다큐멘터리도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강의석 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은밀히 편집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화면 안에 등장하여 노골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애국청년 변희재」를 ‘극화’한다.


「애국청년 변희재」는 어설픈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변희재라는 극우 데마고그를 탐구해보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의의를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변희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영화의 연출 의도를 감독 본인이 스스로 배반한다. 변희재와 그 일당들은 시종일관 어딘가 모자라고,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대며, 인간적으로도 치졸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감독의 이와 같은 의도는 상당 부분 성공하였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내내 실소를 머금게 한다. 


극 중반부쯤 변희재는 관악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지지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닌다. 그는 자신에게 지지 서명을 해줄 것을 거절한 이의 집을 나오면서, 그이가 ‘빨갱이’라서 거절한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다. 뒤이어 다루겠지만 이 지점에서 변희재는 또 다른 데마고그 김어준과 차이를 보인다. 변희재는 더욱더 마이너하고, 더욱더 컬트적이다. 그는 끊임없이 ‘일간베스트’ 회원들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지역주의를 비판하며 오로지 국가만을 위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그가 정작 가장 신경 쓰는 곳은 일베라는 편향된 집단이다. 그러면서 ‘아시아를 경영’하는 보수 활동가들을 키우겠다고 말하는 변희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자기모순적이며, 그렇기에 인간적이다. 


영화 <애국청년 변희재> 스틸컷 ⓒ노네임필름


하지만 반드시 꼭 필요했을지 의문이 드는 장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거나한 술자리가 끝나고 누군가 계산을 해야 할 때, 변희재는 자신의 카드가 없어졌다고 말했다가 술집에서 나오고 난 뒤 카드를 찾았다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빼 들며 멋쩍게 웃는다. 이 장면은 분명 변희재의 못난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인 면모를 탐구한 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의석 감독은 한 명의 인물이 되어 적극적으로 극의 흐름에 참여하면서도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변희재를 다루고 있다. 변희재에 대한 감독의 이해 정도는 그저 질문을 던진다는 행위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기에 「미스 프레지던트」는 성공했고 「애국청년 변희재」는 실패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의미의 정상국가를 외치고 있는 양 정지척 진영 있는 이들 중 우파에 속하는 이들을 들여다보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장면을 영화 중반부가 끝나가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변희재는 신도림역에서 운동원과 함께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데, 운동원이 근처에서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해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 “빨갱이 냄새난다.”라고 혼잣말하듯이 말을 던진다. 당연히 홀로 시위를 하던 이와 다툼이 생긴다. 그러자 그 운동원은 자신이 빨갱이라고 규정지은 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한다는데.”라는 그의 말은 소통 불가의 현실을 보여준다. 자신을 일베로 규정하길 거리끼지 않는 변희재의 운동원을 통해 우리는 혐오가 어떻게 정치의 영역으로 유입되어 작동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변희재와 그를 지지하는 젊은 보수들이 무엇을 혐오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혐오함으로써 결집한다. 이는 ‘일간베스트’의 출현과도 맞닿아 있다. 그들은 혐오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를, 노조원을, 시위대를, 외국인 노동자들을 혐오함으로써 결집한다. 그들은 스스로 강자가 아닌 약자라고 칭한다. 자신들은 혐오의 대상들로부터 피해를 본 희생자이다. 이 ‘루저 서사’를 바탕으로 한 혐오는 기억과 망각의 훌륭한 도구가 되어준다. 그들은 혐오하기 위해 대상을 분류하고 재단한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그들은 하나의 공고한 대체서사를 완성하고 진심으로 정상국가를 목 놓아 부른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고 외치는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만의 노스탤지어를 태동해 나간다. 우리는 한 세대가 지나고 난 뒤에 이들이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미스 프레지던트」를 통해 미리 내다봤는지도 모르겠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부산 서면(1987.06.18)

    

한국, 국가의 부재: 데마고그의 등장과 음모론     

국가는 국민에 대한 통치를, 유일한 합법적인 폭력의 주체로서, 질서를 조직하고 규율을 제정하여 신체와 정신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이룩하려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과 문민 정권은 모두 근대의 훈육적인 권력체제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속성을 공유한다.


군부독재 체제가 종식되면서 성립된 87년 체제는 IMF 사태를 맞이하며 크게 흔들렸다. 그 결과 87년 체제는 97년 IMF 체제와 샴쌍둥이처럼 함께 작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인민들의 주권행사는 점차 체계화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되기는 하였으나 군부가 떠난 자리를 재벌이 차지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IMF 체제의 영향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이 경제구조를 지배하면서 심한 양극화의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기반을 닦은 신자유의 국가의 기틀을 완벽히 다듬었다.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뒤이어 들어선 두 정권의 사익추구 성격을 적확하게 예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2010년을 전후로 돌풍처럼 들이닥친 자기계발 담론이야말로 시대정신을 적확하게 구현한 것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음모론은 더욱 힘을 얻는다. 노스탤지어가 흘러간 지 오래된 과거에 대한 대체서사라면, 음모론은 주로 근래 벌어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마련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보 과잉인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진영논리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진영논리나 음모론은 사람들에게 명확한 선을 그어주기 때문이다. 사실은 복잡하고 진실은 시시할 수도 있지만, 대체서사는 사실을 단순화시키고 진실을 엄숙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김어준은 지난 십 년 동안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하는 집단 내부에서 이런 대체서사를 끊임없이 만들고 유포시켜 온 대표적인 반지성주의적 인물이자 데마고그이다.


김어준은 총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 참여하였다. 2017년에 「더 플랜」(최진성, 2017), 「저수지 게임」(최진성, 2017)이 개봉했고, 올해 4월 「그날, 바다」(김지영, 2018)가 개봉하였다. 세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일단 재미있다는 것이다. 김어준은 복잡한 사실관계를 단순 명료하게 정리하고 편집하여 전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뿐만 아니라 김어준은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메시지 전달 과정이 지루하지 않게끔 조절하는 데 탁월하다. 예를 들어 「더 플랜」의 중후반부에서 김어준은 아예 개표기 기계를 가져와서 자신이 주장하는 시나리오를 시연한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단체 회원들은 김어준의 시나리오가 예측한 결과가 그대로 실현되는 장면을 보고 경악한다. 그들을 따라 관객 역시 놀라게 된다. 이처럼 그가 만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김어준은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세련되게 다듬어 던질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래서 그는 변희재보다 훨씬 영향력 있고, 위험한 데마고그이다.


그가 제작한 세 작품 중 「더 플랜」, 「그날, 바다」는 음모론을 논하는 데 가장 적합한 텍스트이다. 두 작품은 나름의 근거와 논리에 따라 주장을 구축하고 있는데, 「더 플랜」의 경우 18대 대선이 조작된 부정선거였다는 근거가 19대 대선을 치르고 난 후 많이 논박되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영화 <더 플랜> 스틸컷 ⓒ프로젝트 부


「더 플랜」은 영화가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의 신빙성을 강화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서사 전략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상당히 많은 전문가, 명사, 관계자들과 진행한 인터뷰다. 이들이 보증하는 대체서사는 김어준에 의해 다시금 쉽게 풀어진다. 두 번째는 일반 시민들의 등장이다. 이들 중에는 18대 대선 개표 때 참관인으로 참여한 이도 있고, 혹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시민들도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가졌던 의심을 이야기하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두 번째 전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개표기를 통해 ‘실험’을 해보면서 관객에게서 최대치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주장을 매우 간략하고 거칠게 정리하자면, 18대 대선은 조작되었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이 충분하며 그 근거는 통칭 K값이다. K값은 분류표에서의 후보 간 득표율과 미분류 표에서의 후보 간 득표율을 말하는데, 이 값은 1이 되어야 한다. 100명이 투표하여 A 후보가 60%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면, 기계가 인식하지 못해 사람이 직접 확인한 미분류 표에서도 A 후보는 60%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값이 1이 아닐 경우 조작의 손길이 거쳤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18대 대선의 경우 K값이 1.5였다. 개표 결과를 확인해보니 분류표가 팽팽하게 5:5로 나온 지역의 경우 미분류 표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6:4로 더 많은 득표를 얻는 식으로 꾸준하게 K값이 1.5로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 개표 기계를 사전에 조작하여 K값이 일정하게 나오게끔 세팅했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주장이다. 정말일까? 그럴 가능성이 단 1%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19대 대선을 비교 대상으로 살펴보자. 지난 대선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간의 K값은 1.6으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전 국회의원 간의 K값은 1.24로 나왔다. 모두 1에서 초과한 값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후보마다 미분류율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더 플랜」 주장대로라면 19대 대선 역시 조작된 선거인 셈이다. 실제로 홍준표, 안철수 전 후보의 일부 지지자들은 위의 논리를 따라 19대 대선을 조작 선거로 규정하였다. 김어준이 날린 음모론의 부메랑이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온 것이다. 


영화 <그날, 바다> 스틸컷 ⓒ프로젝트 부


「그날, 바다」는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닻을 내리면서 급격히 선회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애초에 세월호 참사는 국정원 등으로 상당히 의심되는 특정 세력에 의해 기획된 사고이며, 이를 은폐하려고 AIS 항적 조작까지 감행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주장은 역시 외력에 의한 침몰을 주장하며 「세월X」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지로’에 의해서도 반박되고 있으며, 참사 직후부터 꾸준히 침몰 원인을 조사 중인 대안 언론 뉴스타파의 주장과도 전면 배치되는 상황이다. 사실 「그날, 바다」의 핵심 메시지와 근거는 과거 김어준이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파파이스에서 제기했던 내용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이 논란에서 슬쩍 발을 빼려는 듯한 포지션을 취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7일 영상보고회 자리에서 김어준은 “영화는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주장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고의침몰설이 유력한 가설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날, 바다」에서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심증’만 있는 국정원 개입설의 경우 “국정원 관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라는 유경근 4·16연대 집행위원장 인터뷰를 내보냄으로써 직접 주장은 하지 않되 편집 방향의 의도는 살린 것이다.


김어준은 이처럼 징후를 일으킨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프레임을 짜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취사 선택한 정보만을 기억하고, 그 외의 것은 망각하라고 부추긴다. 변희재와 김어준은 상반되는 진영의 데마고그이다. 그러나 철 지난 광주사태폭도설을 붙들고 있는 변희재와 달리 김어준은 끊임없이 이슈에 발맞춰 나가고 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한쪽의 존재가 다른 쪽에게 존재의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앞으로도 각각 향수와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두 진영의 공생은 지속할 것이다. 



섬기는 사람들     

인간은 뇌는 기억하기 위해 망각하고, 망각하기 위해 기억한다. 각자가 자신의 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불안감은 사람들의 몸속 깊은 곳에 박혀있다.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한다. 그래서 노스탤지어가 형성되고 지난날을 끊임없이 그리게 되는 것이다. 또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망각한다. 명확한 관계도를 보여주는 프레임 안에서 복잡한 사실관계 따위는 잊어버린다. 노스탤지어의 향유자가 음모론을 믿기도 하며, 음모론의 신봉자가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결국, 이 둘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범위 안에서 포착할 수 있는 세계의 단편(斷片)이다. 개인의 기억과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 시선이 무언가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배제하여야만 한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망각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억의 프레임 바깥에 어떤 것이 자리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타인의 기억이든 자신의 기억이든 우리는 프레임 안에 설정된 포커스를 따라 과거를 기억한다. 그 바깥은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낸 윤곽과 지형지물에 의해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정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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