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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Sep 02. 2020

섬기는 사람들 (1)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보고 듣고 말하기 #25

기억은 주관적인 작업이다. 기억을 더듬을 때, 우리는 기억이 얼마나 개인적으로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 과거를 떠올린다고 하여 지난날이 한 편의 영화처럼 재생되지는 않는다. 추억은 스냅숏처럼 남아 얼기설기 이어진다. 그런 연유로 때때로 인과관계가 뒤틀리거나, 상황이 왜곡된 기억이 생기기도 한다. 오래된 과거일수록 기억은 파편으로 흩어져 있어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꿰맞추기가 쉽지 않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사진첩을 뒤져보는 행위와 유사하다. 사진첩에 철한 사진 중에는 순서가 뒤바뀐 것도 존재하고, 예전에 분명 본 스냅숏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간신히 찾은 사진의 빛바랜 귀퉁이를 붙잡고 들여다보면 단편적인 장면 몇 개가 머리를 스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흐릿하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도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어떤 대상이나 순간을 완벽히 객관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입체주의 화가들이 사물의 모든 면을 화폭에 담기 위해, 그리하여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분투하였던 까닭은 우리의 시선이 본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겪은 이들의 증언이 엇갈리거나, 상반되는 일이 흔한 까닭 역시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일찍이 영화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 1950)에서 진실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다룬 바 있다.


영화 <라쇼몽> 포스터

 

이야기는 이렇다. 폭우가 쏟아지고 나생문(羅生門) 처마 아래 스님과 나무꾼이 이야기를 나눈다. 우연히 한 남자가 비를 피하려 라생문 안에 들어온다. 스님과 나무꾼은 그 남자에게 얼마 전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말해준다.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 마사코는 숲 속을 지나간다. 숨어있던 도적이 나타나 마사코를 강간한다. 도적과 사무라이는 결투를 벌이고 사무라이는 죽는다. 길을 지나가던 나무꾼은 가슴에 단도가 박힌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도적, 마사코, 도적을 붙잡은 이, 나무꾼, 사무라이의 영혼이 빙의한 무녀까지 다섯 명의 사람은 각각 살인사건에 대해 자신이 본 바를 증언한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이 거듭될수록 사건은 오히려 미궁에 빠진다. 증인들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나무꾼은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기에, 그의 시선이 가장 객관적으로 보인다. 나무꾼에 의하면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쳤다는 도적의 주장이나, 명예를 위해 자결했다는 사무라이의 증언은 모두 온전한 사실이 아니다.(사실 나무꾼은 관아에서 한 증언과 달리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지켜봤다.)마사코는 사무라이와 도적 모두에게 버림받은 까닭에 광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도적과 사무라이 간의 결투를 재촉한다. 얼떨결에 맞붙게 된 두 남자는 정정당당은커녕 결투라고 칭하기도 아까울 정도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최후의 순간을 눈앞에 둔 사무라이는 죽기 싫다고 절규한다. 그 모습이 명예롭거나 위엄 있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런데 영화 끝부분에 이르러 나무꾼 역시 사무라이의 가슴에 박힌 값비싼 단도를 훔치지 않았냐는 의심을 산다. 

영화 <라쇼몽> 스틸컷


영화 속 모든 인물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여 진술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결코 솔직해질 수 없다는 구로사와 감독의 말은 기억과 망각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구축하고 합리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와 같은 집단에도 적용된다.


집단적 기억은 역사라는 공식 서사로 갈무리된다. 그러나 역사 또한 과거 해석의 정형이 아니라 모범형에 불과하다. 사관(史觀)이 시대적 상황과 서술 주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역사적 진실은 객관적 사실만으로 성립할 수 없다. 헤게모니의 개입만이 일관성 있는 공식 서사를 담보할 수 있다. 연표같이 시점과 사건만을 기술한 문서는 객관적이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선별하고 명명(命名)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이념적인 행위이다.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라도 단 한 사람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금세 잊히고 만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린다. 과거는 고정된 불변의 무언가라고 여겨지지만, 실상 과거는 가변적이다. 기억의 주체에 따라 과거는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되고 기념되기도 한다.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과거는 현재의 기억의 주체가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에 의해 끊임없이 간섭받고 편집된다. 


알바쉬에 따르면 기억을 소유하는 단위는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기억조차도 사회집단의 틀 속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의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이미 확인된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은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다. 이런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집단적 합의를 거쳐 탄생한 서사구조를 우리는 역사라고 칭한다. 물론 기억은 사회화라는 필터링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기본적인 뼈대를 공유한다. 그렇지만 역사는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어떤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찬성하는지에 따라 수없이 많은 버전의 역사가 분화되어왔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관의 존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며 바람직하다. 각자의 불완전한 재현에 대해 교차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45년 9월 2일 USS 미주리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 서명식


역사서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억하느냐’이다. 이것은 곧 ‘무엇을 망각하느냐’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개인이 체험한 사건을 하나의 서사구조로 편집하는 데 있어 망각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서구적 관점에서 봤을 때 20세기가 시작되고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지나면서 인류는 비로소 세계적 규모의 집단기억을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은 전후 사관을 확립해야 했다. 독일은 기억을 선택했고 일본은 망각을 택했다. 이 상반되는 선택은 해당 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지정학적 변수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노스탤지어와 음모론이 싹텄다. 대동아공영권을 찬미하는 일본의 극우 담론과 히틀러는 죽지 않았고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천수를 누렸다는 이야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노스탤지어와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은 기억과 망각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은 역경의 세월을 보냈다. 한국전쟁이 휴전하고 문민독재 정권과 군부독재 정권이 차례차례 들어섰지만 결국 민주화를 달성했다. 지정학적 이점에 힘입어 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했지만, IMF 위기를 맞아 신자유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수많은 재난이 거듭되었다.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으며,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과 네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연거푸 개최되었다. 


사건이 지나간 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또 망각했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파국은 끝나지 않았다. 큰 지진이 휩쓸고 간 곳은 몇 년에 걸쳐 여진(餘塵)을 겪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파국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여진은 이미 벌어진 틈을 계속해서 흔들어 크기를 점점 키운다. 그 틈과 마주하게 된 인간은 어찌하여 이런 틈이 생기고 말았는지 타당한 설명을 듣기를 원한다. 설명을 듣지 못한 인간은 익숙함을 찾아 도피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진다. 그때가 좋았노라고 자신을 향해 되새김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나름의 설명을 만들기도 한다. 주변의 파편적 근거들을 주워 모아 자신들만의 대체서사를 구축한다. 인간은 낯익은 것에서 안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데마고그들은 불안함을 이용해 자신의 자리를 점지한다. 


영화 <굿바이 레닌> 스틸컷

         

동구, 노스탤지어: 국가의 귀환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 소련 붕괴로 시작된 전 세계적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에도 기억과 망각은 동시에 이뤄졌다. 몰락 직후 사회주의 체제는 부정성만 기억되었다. 그곳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 또 그것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잊힌 채 탈사회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잇따라 사회주의 노스탤지어 바람이 일어났다. 주된 이유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하부구조로 귀속됨으로써 발생한 경제적 박탈감과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의 파괴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이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사회주의 시절과 역사적 실재로서의 현실 사회주의의 정확한 일치 여부가 아니다. 노스탤지어의 대상은 기억과 망각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재구성된 이미지, 즉 ‘상상된 총체로서 그 시대에 대한 보편적 형상’으로서의 국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탈사회주의화의 실패로 나타난 사회주의 노스탤지어 열풍은, 정상국가에 대한 인민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귀환’에 대한 요청이었다.


이는 비단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해당 내용은 다음 장에서 상술할 것이다.

     

「존넨알레」(레안더 하우스만, 1999), 「굿바이 레닌」(볼프강 벡커, 2003), 그리고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은 위에서 언급된 사회주의 노스탤지어 현상, 특히 ‘오스탤지’라고 칭해지는 독일 내에서의 동독에 대한 향수를 진단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편의 영화는 실패한 유토피아로서의 동독을 보여준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장벽이 세워지면서 이미 파국이 예정된 유토피아 말이다. 세 작품은 모두 베를린을 배경으로 동독 시절의 일상을 보여준다. 또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통해 체제 내부 변혁의 조짐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 역시 같다.


Barbara Klemm, Glancing over the Wall, Berlin-Kreuzberg, 1977


「존넨알레」은 동독과 서독을 가로지르는 베를린의 한 거리 이름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베를린 장벽으로 나눠진 그 거리에 사는 미하엘이라는 동독 청소년이다. 한창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미하엘은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는 체제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도, 그렇다고 반항아도 되지 못한 채 떠밀리듯 살아간다. 


서독에서 몰래 들여온 롤링스톤즈의 노래를 듣는 미하엘의 일상은 당시 동독의 전형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밝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개인의 소소한 삶과 체제의 암울한 단면을 동시에 다뤄낸다. 향수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동독 시절을 마냥 찬미하지만은 않는 「존넨알레」는 동독에 대한 서독 주류적 시선과 그에 대한 동독의 대항기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 낙원이라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도 미지근하게나마 끓어오르던 청춘이 있었음을, 주인공 미하엘과 같은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이 존재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동독에 대한 서독의 주류적 해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모색한다.


영화 <굿바이 레닌> 스틸컷


「굿바이 레닌」 역시 주인공의 이름이 미하엘이다. 주인공 미하엘은 아버지가 서독으로 망명한 뒤 열성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베를린 장벽 붕괴 몇 달 전, 어머니는 미하엘이 반체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졸도한 뒤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통일이 이뤄지고 반년이 흘러서야 깨어난다. 어머니가 동독 붕괴 소식을 들으면 건강이 다시 나빠질 것을 우려한 미하엘은 최선을 다해 아직도 동독이 건재하다고 어머니를 속인다. 생산이 중단된 동독 시절 생필품을 구하는 것은 물론, 텔레비전 뉴스까지 제작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미하엘의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이 아들이 준비한 연극임을 알아차리지만, 자신을 위하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굴다가 조용히 삶을 마감한다. 


영화는 미하엘이 만들어낸 미니 동독을 통해 동독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이상이 담긴 요란한 구호를 비추면서 체제의 실패를 조명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적응하고자 악착같이 애쓰는 젊은이들과 이를 씁쓸히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동독 주민들이 지녔던 패배감과 상실감을 건드린다. 「존넨알레」가 동독에 대해 좀 더 풍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했다면 「굿바이 레닌」은 그보다는 더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동독을 그려낸다. 하지만 동독을 실패한 체제로만 규정하는 서독의 주류적 시각에 대한 동독의 저항기억이 짙게 묻어 나온 이 영화가 서독 출신 감독과 자본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타인의 삶> 스틸컷


「타인의 삶」은 앞의 두 편보다 훨씬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작품이다. 「존넨알레」와 「굿바이 레닌」이 연극적으로 재구성된 동독이라는 무대에서 상연되는 삶을 보여준다면, 「타인의 삶」은 그 무대 뒤편의 그림자로서의 삶을 살아간 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슈타지의 비밀요원인 비즐러는 사회주의 신념으로 철저히 무장된 냉혈한이다. 어느 날 그는 연극작가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을 감시하라는 새 임무를 받는다. 두 연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고 감시하던 그는 어느덧 그들에게 감화되어간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드라이만의 집에 있던 브레히트의 시집을 훔쳐 읽는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삶에 공명한다. 결국 비즐러는 동독의 비참한 예술계 현실을 서독의 슈피겔지에 익명으로 고발한 드라이만을 보호하고, 그 때문에 좌천된다. 영화는 드라이만이 반체제인사라며 비즐러에게 감시를 명한 문화부 장관이 실은 드라이만의 연인을 탐했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보여주며, 거창한 명분으로 위장한 썩어빠진 체제를 고발한다. 


감시하는 자인 비즐러와 감시받는 자인 드라이만은 모두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화국은 붕괴하고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낯선 무대에 던져진다. 영화는 말미에 구체제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신체제에서도 재빠르게 적응해 권력의 끈을 놓치지 않았음을 보여줌으로써 무대 뒤편에 자리한 핵심 연출자들만 바뀌었을 뿐 실상 세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타인의 삶」은 기존의 오스탤지 작품이 지녔던 한계인 회고적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붕괴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장벽도, 동독도 아닌 하나의 무대에 불과했음을 「타인의 삶」은 말하고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들로 그 시대를 평가하고 단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영화들을 통해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이 자신만의 서사를 어떻게 구축했는지 알 수 있다. 때로는 그 서사들이 정론이라 일컬어지는 역사서술에서 누락된 것을 말해줄 수도 있다. 사건은 기억되는 동시에 잊힌다. 어떤 것은 기록되지만 다른 무언가는 삭제된다. 시간은 망각을 통해 사건을 미화시키기 마련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분명한 점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노스탤지어란 결국 현실이 소환한 존재라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도래하지 못하고 가능성으로 남았기에 힘을 지니는 서사다. 가보지 못한 길이 아름다운 것처럼, 파편화된 과거가 하나의 서사구조로 재구성될 때 인간은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노스탤지어를 불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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