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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Feb 14. 2021

연년세세

그들은 그렇게 - 보고 듣고 말하기2 #1

대다수의 삶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생은 살아온 날에 비해 빠르게 잊힌다. 죽음은 한 생에 관한 회자를 강렬하게 불붙이지만, 바깥에서 관찰한 생을 소상히 재구축하기란 불가능하다. 복수의 회고가 모여 얼기설기 이어진 망자의 삶은, 이해될 수 없는 사건과 모순으로 세워진 미로와 같다. 남은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맞춰 보려 시도한 미완성의 서사다. 삶은 기록될 수 없다. 기록된 삶은 실재의 삶보다는 차라리 소설에 가깝다. 떠난 이가 무엇에게서 와 무엇으로부터 멀어졌는지 기록한.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그랬기에 그러했다고.


어떤 소설은 너무나 생생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면, 세계 어디선가 책 속의 이야기와 삶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박동하는 생의 작동을 손으로 매만지고 눈으로 담아내어 펼쳐낸 것만 같아, 허구의 서사가 아니라 이름 모를 이가 숨겨둔 비밀스러운 일기장처럼 읽힌다. 그러나 삶은 기록될 수 없기에, 소설이 삶을 닮아가면 갈수록 작가의 이야기 이면에는 누락되거나,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이 증식한다. 이면의 세계가 커질수록 독자는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이야기의 궤적을 따라, 더욱 멀리 나아간다. 간신히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곁에 둔 채, 전해 받은 말을 곱씹는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내게로 와 어째서 떠나가고 있는지.


황정은의 연작소설집 「연년세세」를 읽고 나는 네 편의 소설, 그리고 그 소설들 사이에서 한참 길을 헤맸다. 특정한 경지에 다다른 이에게 상찬의 말을 보태는 일만큼 쉬운 일은 없지만, 나는 황정은이 이제는 정말 뛰어난 소설가의 경지를 넘었다고 확신한다. 그가 남긴 이야기는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묘사의 적확함을 넘어, 말의 외피를 뒤집어쓰지 못하고 떠도는 것을 낚아챈다. 황정은의 소설은 텍스트 독해 자체를 미적 경험으로 이끈다. 그의 소설은 순식간에 읽히다가도, 잠시간 고개를 들어 책 너머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이순일, 한영진과 한세진, 순자와 윤부경, 하미경과 제이미의 이야기는 네 편의 소설 속에서 교차한다. 각각의 소설에서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충해주기도 하고, 더 깊은 미로로 안내하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도저히 하지 못한 말들을 간직하며 살고, 그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얼마간은 미워하며,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견뎌내는 모든 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아가는 일이 대개 서글프고 안타까운 까닭은 기록되지도 못하는 삶이 지나치게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삶은 말과 이야기의 힘을 빌려 간신히 이어지다 기억의 잔해 속으로 파묻힌다. 육체가 마모됨에 따라, 이야기는 늘어난 테이프처럼 훼손된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잃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입과 입에서 떠돌던 이야기는 때때로는 허튼소리나 철 지난 옛타령 정도로 치부된다. 수많은 순자의 삶이 그랬을 것이며, 그러할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한 이야기가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아이. 누워 잠을 청할수록 감각이 도드라져, 베고 누운 베개의 빈약한 솜뭉치와 덮고 누운 홑이불의 바스락거림이 점점 더 잠을 깨우는. 밤의 한 가운데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도, 자신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들과 중첩되어 알아듣기 힘든 중얼거림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황정은이 순자들에게서 느꼈을 서글픔과 애틋함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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