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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May 10. 2020

2020년 2월. No feeling is final.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영화 <조조 래빗>의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으나..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2월 둘째 주 즈음에,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영화관에 가서 급히 몇 편의 영화를 몰아봤다. 문득 지금 영화관에 꼭 봐야만 할 영화가 많은 것 같고, 개봉대기작 중에도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서 미루면 다 내려갈테니 얼른 하나씩 보자는 마음이었다. 근데 어쩌다보니 그게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3x번대일 시점이어서.. 결국 코로나 여파를 직격으로 맞은 영화들을 본 셈이 되었다.


그 중 <조조 래빗>을 보고는 너무 너무 좋아서, ‘꼭 한 번 더 봐야지 그리고 3월에 월간 안전가옥으로 써야지 그런데 글 올라갈 때 쯤이면 영화가 다 내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더 보지 못했고.. 그러나 원래 2월 말에 개봉했어야 할 영화들의 개봉일이 밀리면서 아직(?) 영화가 걸려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선 저를 믿고 여기까지만 읽고.. 얼른 <조조 래빗>을.. 보세요..)


조조는 열 살인데, 히틀러 덕후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막 진행중이던 시대의 덕후라.. 히틀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외치는 나치 어린이다. 그래서 상상친구도 무려 히틀러인 그런 어린이. 조조는 히틀러를 위해 싸우는 소년병이 되고 싶어하고, 상상친구 히틀러는 그런 조조를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칭찬하며 부추긴다. 조조는 소년병이 되기 위해 들어간 캠프에서 살아있는 토끼의 목을 비틀라는 명령을 받는데, 결국 명령대로 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조조는 겁쟁이 토끼, 조조 ‘래빗'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그 때 시무룩해진 조조에게 상상친구 히틀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토끼는 작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야, 매일 매일을 적과 싸우면서 가족을 위해 당근을 구해오잖아. 그러니까 토끼는 영웅이야. 겸손한 토끼는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어. 토끼가 되렴.’ 일견 ‘용감하지 못함'이라는 억울한 이유로 상처를 받은 열살 꼬마를 위로하기에 참 시의적절한 조언 같지만, 조조는 이 말을 듣고 과하게 용기를 얻은 나머지 캠프에서 무모하게 수류탄 훈련장에 뛰어들고, 폭발 사고와 함께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 덕에 캠프에서 나가게 되고, 꿈을 접게 된 조조. 그럴 때 히틀러는 곁에 없다. 상상친구 히틀러는 조조가 어려울 때 당황해하며 사라졌다가, 조조의 자존감이 낮을 때 나타나서 그럴듯한 말로 조조의 방향을 모르는 분노와 두려움을 부추긴다. 그러다 조조가 말을 안 들으면 윽박지르고,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조조를 보살피지는 않는다. 든 것 없는 수프를 깨작이는 조조 앞에서 혼자 거대한 칠면조 구이를 썰어먹는다. (이 쯤에서 누군가가 떠오르신다면?.. 자연스러운 두 번째 관람권유)


다친 후 자존감을 다 잃어버린 조조가 다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건 엄마 로지다. 본인은 나치고 용감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조조가, 그 나치들이 실제로 저지르는 일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로지고, 얼굴의 상처 때문에 못생긴 괴물이 됐다고 성을 내는 조조에게 ‘니가 너한테 한 짓인 거 알지'하고 현실을 깨우쳐 주고,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의 힘을 보여준다.



조조와 로지를 보면서 ‘회복 탄력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 몸도 힘들고 마음도 지쳐버렸을 때, 나는 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던 과거의 열심하지 않은 나를 탓했고, 이 일들이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믿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만났던 상담 선생님 덕분에 걱정하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어떤 때에는 이것 자체가 나의 영구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마음을 지켜보고 다스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하는 상상친구를 막아내야 하는 것.


하루 이틀씩 더 살아가면서, 슬프고 괴로운 일 안에서도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다 매끈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어느 날은 잔뜩 긁힌 어제 덕분에 빛날 수도 있다는 것, 뼈아픈 상처 덕분에 실수를 덜 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나니, 좋은 날의 총합이 커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좀 더 쉬워졌다.


영화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구절을 인용하면서 끝을 맺는다.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 Just keep going. No feeling is final. <조조 래빗>은 이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플롯부터 음악, 미술, 배우와 대사, 연기 어느 요소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끝까지 달린다. No feeling is final이어도 <조조 래빗>에 대한 이 벅차는 마음은 분명히 final일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더 좋아질 뿐이겠지..)


아무튼 자꾸만 2020년이 ‘본격’ 시작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올해의 목표는 이것으로 정해봐야겠다. 잘 Let everything happen to me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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