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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ul 30. 2021

2020년 4월. 커뮤니티.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공개했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1. 

4월 말에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습니다. 같은 동아리에 있었던 후배고 나름 친했는데,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였어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제 기수 회장이어서 친구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잊어버린 얘기도 있고 정말 몰랐던 얘기도 있고 해서 후배한테 듣는 새로운 소식들이 꽤 있더라고요. 정확히는 새로운 소식인데 헌 소식인 거죠. 그 친구도 저의 헌 소식을 새롭게 듣기도 했고요.


어쨌거나 이렇게 10년이 넘게 지나서 만났는데, 세월이 무색하게 이야기가 끊기지도 않고, 하는 일도 맥락이 닿아 있어서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저희 동아리는 과학토론(...) 동아리였거든요. 구성원들끼리 과학도 토론도 아닌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고, 그걸 10년이 지나 알았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2.

4월 마지막 주에는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네 번 정도 갔던, 그러니까 한 해에 한 번 정도 갔던 협재의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일단 소식을 듣고 이번 주말에 갈게요 ㅠㅠ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비행기 표를 끊고,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면서 슬슬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 곳에는 저보다 훨씬 자주 방문하는 게스트들이 많았고, 방문하다 못해 제주에 정착해서 주민이 되어 놀러오는 사람도 많았고,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 전 ‘인사이더' 입장은 아니었거든요. 꾸준히 인스타로 소식을 보기는 했지만, 자주 가는 사람 중에 친한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어쨌거나 갔습니다. 안 가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가서 쭈구리가 되더라도 그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쭈구리가 된 채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하고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게 제가 쫄쎈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곳에 갈때마다 저는 안 하던 짓들을 할 수 있었거든요.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따라 영실코스에 올라가거나, 비가 잔뜩 내린 오름을 기어올라서 발톱을 다 부러 뜨린다거나 하는 것, 이번에는 삼겹살 굽는 불판에 고사리를 같이 구워먹는 것이었고요.


3.

제가 처음 조인했을 무렵의 안전가옥은 ‘살롱 문화', ‘직장인 모임', ‘취향 커뮤니티' 같은 키워드로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 공간 서비스와 함께 묶여 종종 언론에 소개되었습니다. 안전가옥은 ‘이야기 창작자 커뮤니티'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비슷은 한데, 다르기도 해서 커뮤니티 사업의 조건은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이잖아요. 커뮤니티의 3요소도 비슷하게 구성원, 공간, 콘텐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구성원은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게 ‘순환'이 되어야 하며, 누군가는 ‘고인 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오래 남아 커뮤니티의 핵심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코어 멤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공간. 그 중에서도 오프라인 공간은 필수일까요? 코로나 시대를 겪고 보니 언택트가 최고의 가치처럼 느껴지지만, 커뮤니티는 ‘컨택트'가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콘텐츠는 결국 그 커뮤니티의 핵심일텐데요. 책이거나, 영화거나, 넷플릭스거나, 지역사회거나, 아이돌이거나, 등산이나 여행이거나, 심지어 구성원 자체일 때도 있는 듯 합니다. SKY 출신과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들을 모았다는..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정체모를 커뮤니티들이 구성원 자체가 콘텐츠인 커뮤니티의 ‘별로인 예'겠죠.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까요. ‘나 이런 거 해’라고 어디가서 떳떳하게, 혹은 속으로 떳떳하게 여길 수 있는 소속감, 강제하지 않아도 그리고 ROI가 안 맞아도 하는 것, 그러니까 자발성도 있으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즐거움'이 선결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 함께 하고 있을 때 즐거우면, 피곤해 죽겠는데 밤을 새야 해도 할 수 있잖아요.


이런 요소들을 저의 고등학생 시절 동아리, 쫄깃쎈타, 그리고 지나 온 수많은 커뮤니티들에 대입해보니, 대략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요소가 필수이고 옵션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공하는 커뮤니티를 구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한 두 명의 노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여행업의 흐름과, 코로나 바이러스와, 면학 분위기 형성을 위해 고심 끝에 동아리 제도를 없애기로 한 학교의 결정 같은 것은 예측하기도 대비하기도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구성원들의 ‘즐거움'은 다양한 요인으로 증폭되기도, 소멸되기도 하니 더더욱 그렇겠죠.


어떤 커뮤니티들에 새로 편입되고, 어떤 커뮤니티를 떠나오고 있는 요즘, 안전가옥은 운영멤버에게, 파트너 멤버에게, 또는 연무장길 시절의 창작자 멤버들, 시즌패스 멤버들에게 어떤 커뮤니티였는지 부쩍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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