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돋보이지 못하는 우리들

영화 <인사이드 르윈>

by Dongju Choi

르윈 데이비스. 그는 과거의 미련에 사로잡히지도, 그렇다고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지도 않는 그저 살아가고(Living), 살아가는(Breathing) 가장 보통의 인간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질적으로 그 생의 목적에 솔직하다는 것 이외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파 위의 삶을 사는 르윈에겐 투명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는 진과의 관계나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은' 포크 음악도 그에겐 그저 밥벌이에 지나지 않으니(그는 밥벌이에 대한 자기혐오를 ‘프로’라는 이름의 콤플렉스로 포장한다) 그야말로 좋아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 어떤 것 하나도 싫어하지 않았고, 피하려고 해 본 적도 없지만 세상은 그에게 도무지 ‘만족’이란 선물을 한번 내주지 않는다. 모자람에 목마른 결핍이란 빈자리, 다시 말해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내내 이미지와 음악으로 무덤덤하게 나열되는 것은 르윈의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이다. 고양이 한 마리 책임지지 못하는 그에게 인생이란 자신의 몫만으로도 버거운 그 어떤 것일 테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그의 인생은 퍽 슬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그를 위로하고 싶지 않아 지는 건 그의 삶이 곧 현실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적당히 닮아있어서가 아닐까. 영화 속 르윈처럼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할 테지만, 우리는(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질문의 대답과 다른 삶을 기필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엇나가는 삶. 언제까지고 닿을 수 없는 일련의 평행 세계처럼 이 역설적 관계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관통하는 동시에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도 뒤처지지 않으려 쉬지 않고 발을 굴러댈 것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그럭저럭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되는 <인사이드 르윈>. 화면 속 르윈은 삶에 치여 이리저리 헤매는 우리들의 귓가에 이토록 담담하고 소박히 노래한다. "Hang Me, Oh Hang me, and I'll Be dead and gone~"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짓말 같은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