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27살의 나는 집착적 관계에 빠져있었다. 연락하는 여자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남자. 너무나 흔해 더 이상은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그런 관계였다. 나는 초여름에 시작하여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을 돌아 이듬해 봄까지, 일년 내내 불행했다.
돌아온 봄에 이 책을 만났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 본인이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안정적이지만 지속할 수 없던 관계에서 꺼내준 남자와 시작된 지긋지긋한 관계. 졸업-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삶의 표준에서 이제 출산만 남은 그는 어느날 본인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벼락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지부진한 이혼의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소울메이트'의 관계의 늪에 빠진다. 이 책은 그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만났을 때의 나는 그 중 소울메이트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서 있었다.
사실 갈등이라니 우스운 말이다. 그건 나나 엘리자베스에게나 갈등이었지, 상대방에게는 아마 '왜 이래' 정도였을 것이다. 나 혼자 전전긍긍하는 관계. 틀린 걸 알지만 놓을 수 없던 순간들. 그와 나눈 메세지를 밤이 새도록 곱씹으며 온갖 상황극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들. 나의 소울메이트는 그 남자라고 확신하며 그 남자에게도 내가 소울메이트일지 의심하는 나날. 그리고 시간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의 시간에도 조금은 포함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
"넌 쓰레기통 속의 떠돌이 개와 같아. 빈 깡통을 계속 핥으면서 거기서 어떻게든 영양분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지. 까딱 잘못했다간 네 주둥이가 깡통 속에 영원히 박혀서 인생 비참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둬."
나는 이 페이지를 닳도록 곱씹었다. 엘리자베스가 인도에서 만난 아쉬람의 친구가 엘리자베스에게 한 이 말은 책 속의 엘리자베스를 구원하고, 책 밖의 나를 구원했다. 약 일여녀 기간동안 나의 소울메이트였던 그 사람은 그 역할을 다 하고 이미 떠났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드디어 내가 떠날 차례가 오래 전에 지났음을 인정하고, 거기서 천천히 걸어나올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발을 뺏어야 했지만, 그때라도 뺀게 어딘지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온전한 자아임을, 나는 지독한 1년을 겪으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