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룩 스타일링
유학 전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던 동안, 직장생활 5년간 나는 정석이라고 할만한 오피스룩을 거진 매일 입었다. H라인, 펜슬 스커트, 슬랙스, 블라우스 혹은 셔츠, 가끔 니트. 오에서 칠센티의 힐.
나의 로망이었다. 티비에서 커리어우먼들이 입는 옷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사회에서 성공한 여자는 다 그런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회사에 첫 취업을 했을 때는 신이 나서 매일 쇼핑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을 너무나 혹사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내가 다니게 된 회사는 마침 복장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비지니스 캐쥬얼을 비롯해 편한 복장들이 대세인 것마냥 많은 기업들이 기업 문화를 바꾸겠다며 캐치프라이즈를 바꿔걸었다. 나는 뭘 입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예전처럼 입으면 트렌드에 뒤쳐지는 건가?
그때 나는 우연히 클로에 디자이너였던 피비 파일로를 보았다. 나는 매시즌 패션쇼를 즐겨 보았는데 항상 마지막에 디자이너가 뭘 입는지가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피비의 옷은 나에게 깊은 엉감을 주었다. 편안하면서도 절제된 옷. 하지만 그냥 편해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다워보였다. 프로페셔널리즘이 묻어나는 편안함이라니. 특별하지 않은 아이템으로 만든 그녀의 분위기는 옷을 입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내면. 내면에서 우러나는 태도. 그 옷은 그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패션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나는 이 식상한 말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내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이유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런 느낌, 여기서는 이런 사람, 나에게 옷은 언제나 자기 표현의 수단이다. 사람은 한가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가고 오피스 룩을 입었던 그 시간들에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과 지금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무엇을 입을지는, 다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여전히 오피스룩을 입는다.
블라우스를 입고 슬랙스를 입는다. 다른 스타일로. 내 몸을 구속하지 않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