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떠나는 여행

지도에 없는 마을

by 여온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가지 못한지도 벌써 한참이 되었다. 아니다, 사실 나는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비행기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자의 연차가 15일에서, 최대 길어야 20일인 나라에서 명절을 낀 날들의 비행기 값이란, 말도 못하게 비쌌다. 비교적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던 나는 명절엔 주로 중간에 몇일을 골라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갔고, 비수기에 여행을 다녔다.

어쨌거나 코로나는 비수기 여행도, 귀향도 막았고, 나는 서울의 작은 나의 집에서 긴 연휴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도서관에 가서 빌린 두툼한 책들과 함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던 내 눈이 이 책을 발견한건 순전히 여행을 못가서이다. ‘지도에 없는 마을’ 나는 이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같은 장소들을 소개하는 그런 책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펼쳤다.


‘지리가 점점 기묘해지고 있다.’ 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읽고, 책 날개를 펼쳤다. 글쓴이는 사회지리학자였다. 이 책은 나를 숨겨진 여행지로 데려가는 대신 ‘전투 중인 고립지, 현대의 유토피아, 그리고 여러 지러적 외톨이와 고아’로 데려갈 예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지리를 좋아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리를 좋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탐구에서 세계사와 한국사를 고르면서도 세계지리는 빼놓았고, 내가 주로 읽는 역사서들도 최대한 지리를 배제한, 한 지역의 역사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내 앞에는 5일의 연휴와 이 책이 남았다.


그런데, 이 책 정말 재밌었다. ‘지리’, 지표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및 인문 현상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인데, 나는 그 동안 ‘지리’라고 하면 어떤 곳의 지형이나 길 따위의 형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책은 나를 사하라 사막, IS-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지대로 데려가 지형 위에 얹힌 사람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한편, 신유목민의 삶과 구글어스 시대의 이면을 읽어내려가게 했다.


지형은 변한다. 필리핀에서는 2016년에 새로운 섬 534개가 ‘발견’되었다. 보트니아에서는 매년 새로운 섬들이 생기고, 없어지며, 사람들은 소유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싸운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차원을 뛰어넘어 삼차원을 사는 부자들이 있다. 지형은 변한다. 그 위에 깔린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의해.


지리란 지구라는 공간에 있는 인간들의 욕망,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다가도 결국 지면에 닿고자 하는 모순, 신나게 개발 하는 한편 버려진 땅에 대한 다양한 변주다. 이 재밌는 걸 그 동안 몰랐다니, 약간 억울해진다.


책에는 우연한 발견이 있다. 이 우연한 발견이 나를 새로운 장소로 데려간다. 그 어떤 물리적 이동도 없이.



*모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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