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엄지손가락의 티투
어릴 때 기억의 상당 부분은 방에서 혼자 책을 읽던 기억이다. 어릴 때 나는 수줍음이 많았거나, 사람이 싫었던 것 같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던 아빠는 내가 자던 방의 한 벽을 모두 책으로 채워두었다. 나는 그 양식을 파먹으며 쑥쑥 자랐다.
거기에는 세계명작도서전집도 있었고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도 있었다. 세계명작도서에서 삼총사의 달타냥을 만났고, 유관순열사며 황희정승이며 모두 그 방에서 처음 만났다. 장발장으로 번역된 레미제라블은 성인이 되어 다시 읽고 내 어린 시절 독서에 대해 한동안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 방에서 만났던 책 중 가장 마르고 닳도록 읽은 책은 ‘초록색 엄지손가락의 티투’이다.
티투는 부자집 도련님인 소년으로 정원사를 통해 본인이 초록색, 즉 식물을 키워내는 특별한 마법이 걸린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그 특별한 손가락으로 티투의 아빠가 준비한 전쟁용 대포에 꽃을 피워놓고, 총알 대신 꽃을 발사하게 하여 전쟁을 막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키운 넝쿨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천사가 된다는 참 단순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글이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키우는데는 젬병이어서 내 엄지손가락이 초록색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전쟁을 막는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은 꾸었다.
매일 밤 그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밤마다 포탄 대신 꽃이 쏟아지는 대포를 상상했다. 내가 총을 쐈는데 총알 대신 꽃이 나간다면 무슨 꽃이 좋을까를 고민하며 내가 아는 꽃들을 헤아렸다. 아름다운 삽화가 그려낸 복슬복슬한 곱슬머리의 소년은 사랑스러웠고, 그 사랑스럽고 순수한 소년이 전쟁을 막으려 부모님과 어른들 몰래 무기저장소에 숨어드는 모습은 박진감 넘치는 한편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가끔 그 책을 생각한다. 꽃으로 전쟁을 막는것. 내가 꿨던 모든 꿈 중에 그보다 낭만적인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