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부리기 좋은 책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by 여온


한동안 사람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있는 척 허세를 부리느라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이 책을 권하곤 했다. 이름부터 거창한 이 책은 정말 표지부터 허세부리기 좋은 책이다. 화려한 글씨체로 “Renaissance”가 크게 써져있고, 그 위엔 “퓰리처 상 논픽션 부분,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으로 마무리. 게다가 꽤 두툼해서 책 좀 읽었다, 싶다.


그리고 거기에 무슨 내용인데? 라고 물으면 근대가 책 한권에서 시작되었다는 내용인데, 정말 재밌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는 거라곤 책 사냥꾼과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라는 그가 ‘사냥’한 책이 암흑의 중세를 종말시키는데 엄청나게 기여했다, 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쓸 겸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다행히 큰 줄기는 맞았다. 책의 주인공인 포조 브라촐리니는 중세의 말기, 각 지역에서 교황이 난립하던 시기의 로마의 교황의 비서였다. 그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권력의 맛을 즐겼지만, ‘고대 세계의 유물을 발굴하는 것’은 포조의 삶의 최고 목적인 인문주의자였다. 그러다 그가 모시던 교황 요한네스 23세가 교황권을 잃자 실직자가 된 김에 인문주의자로서 본격적인 ‘책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그는 사냥 중 루크레티우스가 쓴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을 담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인문주의자 친구들을 통해 이 책은 전 유럽으로 서서히 퍼져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뒤흔든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모든 입자는 무한한 진공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보이지만, 이 생각을 기원전 1세기에 했다는 것, 그리고 이 생각을 담은 책이 유일신과 천지창조를 믿는 시대를 살아남아 근대의 씨앗이 된다는 것, 참 멋지지 않은가.


가톨릭의 이념에 배치되는 책이 어떻게 거의 1천년에 달하는 중세를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대답, 포조 브라촐리니의 삶을 이용한 그 시대의 복구, 그리고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진정한 이해까지, 다 담고 있다. 게다가 소설의 형식을 가져왔기에 술술 읽힌다.


그리고 이 책 두꺼워보이지만 1/4정도가 참고서적이라 실제 페이지는 300페이지 정도다. 허세부리긴 정말 최고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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