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왜 지금 나는 또 이런 책을 읽고 있나.

고기로 태어나서

by 여온



그러니까 왜 지금 나는 또 이런 책을 읽고 있나. 사실 작년 여름 채식에 관한 책 서너권을 읽고나서 한동안은 이 이슈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내 입장을 정리했었다. 그러고 겨우 육개월, 나는 또 괴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참 자발적으로.


채식을 하는 파트너와 서울에서 함께 한지 일년여.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잡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테이크를 요리해먹고 라자냐를 먹으며 행복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비건이 되겠다는 파트너의 선언은 솔직히 벼락같았지만 유럽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건 인구도 많은데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 메뉴명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전부 포함되는 투명함까지. 그러다 서울에 왔다.


나는 밥 먹는 것이 지뢰찾기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세상에, 우리는 참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야채김밤에도 햄이 들어갔다. 튀김에는 마요네즈를 뿌려서 줬고, 국물 요리엔 언제나 멸치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년,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택은 ‘이미 만들어진 요리를 안 먹는 것’과 ‘고기를 요리한 것과 같은 조리대에서 요리한 야채도 먹기 싫다’ 의 싸움으로 번졌고, 나는 채식에 대한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섭식일기’,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등을 읽으며, 나와 육식 사이의 관계는 가급적 먹지 않는다. 하지만 즐길 때는 최선을 다한다. 로 정리 되었다. 그리고 파트너와는 비건 식당을 가거나, 집에서 조리해서 먹는 것으로 결론 났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식당에서의 도전을 거의 멈춤으로써 평화를 찾았다.


게다가 그 사이, 우리나라의 비건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내가 처음 온라인으로 파트너를 위한 채식 식품을 살때만해도 몇개 되지 않던 대체육, 식물성 단백질이 어느새 대기업에서 나오는 구색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비건 식품을 살 수 있는 시대가 갑자기 왔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었나.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공장식 사육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작가가 닭농장, 돼지농장, 개농장에서 일한 기록이다. 고기로 태어난 생물의 시간의 제약과 공간의 제약을 모두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나에게 특히 와닿았던 건 공간의 제약이다. 자연수명은 15~20년이지만 30일을 사는 닭, 6개월을 사는 돼지라는 사실도 끔찍하지만, 내 방만한 공간에 몇십마리가 아예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갇혀있다,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리고 그게 미국 얘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했다. 나는 실눈으로 그 무게감을 비껴내려고도 해보고, 너무 끔찍한 장면들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봤을 때,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평화를 찾아도, 수만마리의 동물이 끔찍한 환경에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매거진의 이전글많이 좋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