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일 말고는 달리 아무 일도

마침내 런던

by 여온


다양한 이유로 책을 고르지만, 표지에 쓰인 문구가 맘에 들어서 책을 골라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멋진 일 말고는 달리 아무 일도’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이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뉴욕에 사는 무명 작가인 헬레인은, 런던의 책방 주인과 20년간 책 구매와 책에 관한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 편지들을 모아 ‘채링크로스 84번지’ 라는 책으 출판하는데, 웬걸, 그 책이 대박이 났다. 그래서 책의 홍보와 인터뷰를 위해 런던에 초청된 헬레인의 런던 여행기가 ‘마침내 런던’이다.


나는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읽지 않았지만, 책에서 묘사하는 런던은 생생하게 느꼈다. 2019년에 갔던 런던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책이 2000년대에 쓰여졌겠거니 하며 읽다, 헬레인의 바지 정장에 묘사에서 이 책 대체 시대가 언제야? 하고 확인해보니 무려 80년대 초반에 쓰여진 글이 었다. 런던의 변하지 않음에 웃음이 났다. 그러고나서는 핸드폰이 아닌 호텔에 메세지를 남기고, 편지를 주고 받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도 옛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나 자신이 황당했다. 유럽에서 온갖 고지물을 우편으로 받고 제출했던 기억에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헬레인 말처럼 ‘런던에서 이른바 역사는 살아 있고,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헬레인의 냉소적이면서도 런던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하루하루를 따라다니는 건 정말 굉장히 즐겁다. 허술하게 관광을 하기도 하고, 독자들과 인연이 되어 교외로 놀러다니기도 하고, 친구가 소개해준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살아본 적도 없는 80년대, 인터넷이 당연해지지 않은 시절의 여행이 그리운 것이다.


팔려고 쓴 글은 정말 생계만 잇게 해주고, 그냥 쓴 글들은 그녀를 ‘블룸즈버리가의 공작부인’으로 만들어줬다. 전업 작가로 팔기 위한 글을 더 많이 썼을 헬레인에게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감히 헬레인이 채닝크로스 84번지와 마침내 런던의 성공을 통해 순도 높은 기쁨을 누렸기를 바래본다.


“멋진 시간을 보내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멋진 일 말고는 달리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는 시간도 그렇다. 멋진 일 말고는 달리 아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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