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독점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세게사를 선택과목으로 배웠다.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고 세계사의 본격적인 재미가 시작되는 부분은 바로 그리스-로마 시대인데,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가 태동한 그리스의 역사는 정말 흥미롭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비롯 온갖 정치 철학이 발달하고, ‘시민’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그리스는 어떤 이상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자와 노예를 배척한 남성 중심적인 ‘시민사회’의 한계를 느끼게도 한다. 그때만해도 그게 다였다.
그리스의 ‘시민’들이 왜 노동하지 않는 존재들이었는지 이해하게 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뒤, 한창 일에 찌들어 있을 때였다. 동물 윤리 및 농장식 사육에 대한 혐오감으로 약 일년정도 육식을 중단했었다.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고기를 안 먹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닭의 자연수명과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닭의 수명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하며 넘겼다. (참고로 닭의 자연수명은 20년 정도,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닭은 30일정도 살았다) 그리고 고기 대신 새우와 생선들을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기사를 읽다보니 결국 이걸 사먹고 있는 소비자가 문제구나, 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때 어찌나 분노했던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게 왜 다 소비자 탓이냐.다 그런식이라면 소비자는 뭘 먹냐. 애초에 그런거 그렇게 못 하라고 있는게 정부 아니냐. 노동 환경을 개선해서 값이 오르면 그걸 살지 말지 결정하는게 소비자 아니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가 맛있는데 싼걸 찾는거 당연한거 아냐. 싸고 맛있어서 먹는게 뭔 죄냐. (중략) 피곤하다.”
그렇다, 자본주의면서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시민들이 해야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서 그리스의 시민들이 노예를 부리며 노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노예를 부리며 노동하지 않았기에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책에서는 결국 디지털 광고로 돈을 버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스팸 메일 회사에 가깝지 않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점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과 IT 시대의 플랫폼들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기업’의 모양을 취하는 것에 대해 신랄하고 자세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촉구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결국 기업을 움직이고 정치를 움직이는건 시민밖에 없긴 한데, 정말 시민들은 바쁘기도 하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2/2014061200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