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레퀴엠》 되짚어보기 (2)

하지만 나는 변치 않는 별들을 보고 있었다네 (1917)

by 오팔트

전곡 번역 링크



But I was Looking at the Permanent Stars


Bugles sang, saddening the evening air,
나팔들이 노래하며 저녁 공기를 울적함으로 적시고
and bugles answered, sorrowful to hear.
그에 또 나팔들이 응답하니, 듣기에 구슬프더라.

Bugles sang, bugles sang.
나팔들은 노래했다네, 나팔들은 노래했다네.

Voices of boys were by the river-side.
강가에선 소년들의 목소리가 울렸었네.
Sleep mothered them; and left the twilight sad.
잠은 새 어머니로서 그들을 품고서 황혼을 슬픔에 빠뜨렸지.
The shadow of the morrow weighed on men.
다가올 날의 그림자는 사람들을 내리눌렀고.

Bugles sang.
나팔들은 노래했다네.

Voices of old despondency resigned, resigned,
오랜 세월에 체념해 버린 허망감의 목소리는
bowed by the shadow, shadow of the morrow,
다가올 날의 그림자에 눌려 구부정한 채
slept.
잠들어 버렸네.


시 제목


다행히도(?) 이 시의 경우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서 기존 제목들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번역할 수 있었다. 아마 미완성작이라는 이유가 큰 듯. 동시에 이 점 때문에 제목이 시 안의 내용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이루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언 시 중에서는 낭만적이다 싶을 수준으로 감수성이 짙게 묻어나는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먼저 시를 먼저 번역한 후 자연스럽게 드러난 씁쓸한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 제목을 마지막에 정했다.


번역의 방향성


일단 시 자체가 애상적인 회상의 어조를 사용하고 있기에 일부 기존 공연에서의 번역처럼 “나팔들이 노래했다, 저녁 대기에 슬픔이 감돌았다” 식의 다소 딱딱한 어투보다는 문학적이고 감각적인 어조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이 섹션 역시 「절명을 앞둔 젊은이들을 위한 송가」의 후반부처럼 음악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반주 역할 정도에 그치고 있기에 텍스트만 세심하게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감성 전달은 충분히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잔잔한 애도의 분위기를 고수하던 브리튼의 음악이 마지막 연에서 resigned 다이내믹 상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대를 놓아 버린 그 무력감의 절절한 전달을 위해 “버리다”와 같은 보조 동사를 활용해 묘사에 좀 더 극적인 힘을 보태 보았다.


특히 신경 쓴 구절


Sleep mothered them

단순한 문장이지만, 이 곡에 사용된 오언의 시구 중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함축성을 자랑하는 구절. 우선, 바로 직전 행에서 드러나듯, 지금 화자가 회상하는 병사들은 소리만 들었을 때는 그냥 소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앳된 목소리다. 다르게 말하면, 아직 부모에게서 독립할 나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이들이라는 소리다. 당연히 집을 떠나 하루하루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가는데, 엄마의 품이 그립지 않을 리가 없겠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역할은 너무도 잔혹하게 영면이 대신해 준다. “잠이 그들에게 엄마 역할을 해 주었다”라는 간단한 표현 안에 이토록 가슴 찢어지는 순간을 모든 층위를 빠짐없이 담아, 그것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이러니로 그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이 함축성이 시어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분석할 수 없는 번역가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정말 많은 번역과 자막들이 “잠이 어머니처럼 돌봐 주었다”와 같은 식으로 옮겨 놓았더라. 물론, 전쟁터에서 잠만이 일시적인 휴식이 되는 순간이라는 묘사도 안 슬픈 건 아닌데, 솔직히 그 비극성이 시가 원래 의도한 바와 급이 같다고 하긴 좀 민망하다. 게다가, 이튿날에 소식을 접할 세상 사람들에게 덮쳐 오는 그림자 묘사는 그 정도 가지고는 과하게 불길한 묘사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은 함축성과 모호성 사이의 줄타기를 하느라고 상당히 많은 수정을 거치고 예전 버전과 새 버전 사이를 오가기를 반복한 구절이다.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와 “어머니로서 품어 주었다” 사이에서 계속 고민했는데, 분명 의미의 명료성은 전자가 낫지만, 죽음마저 엄마 품의 온기가 되는 전쟁터의 가혹한 슬픔은 후자에서 더 잘 드러나서 쉽게 하나를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역시 기존 번역과 같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아서, 최종적으로는 비가역성의 뉘앙스를 좀 더 더해 오해의 소지를 더 줄일 수 있는 “새 어머니로서 품어 주었다”를 선택했다.


Voices of old despondency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bugles, the evening air, the twilight 등 의인화된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despondency를 개념으로 보고 old를 오래됐다고 해석할 것인지, 아님 despondency를 의인화된 하나의 주체로 보고 old를 나이가 많다고 해석할 것인지는 분명한 정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이다. 나는 가능하면 원문을 따라서 양쪽으로 모두 해석이 가능한 중간 지대를 선택하고 싶었고, “오랜 세월을 지낸”은 이런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사람과 사물 모두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표현이라서 이대로 번역했다.


타협점


old despondency resigned, resigned, / bowed by the shadow, shadow

원문은 old와 resigned를 한쪽에 몰아넣는 대신 resigned를 수식어 뒤쪽으로 빼서 모두가 비극에 익숙해져 버린 암울한 상황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어에서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붙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체념한”만을 다른 수식어들과 별도로 배치해 비탄의 강조를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 들어 이 부분은 살리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서양권에서 장엄함이나 정서 강조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동일 어구의 반복은 한국어에서는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강조보다 리듬감의 역할에 더 기여하여 진중한 분위기를 해칠 수 있고, 이 반복은 원본에는 없던 것을 브리튼이 추가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쉽지만 이 구절의 음악적 격양을 구현하는 것은 오언 버전에 충실하겠다는 핑?계와 함께 타협하기로 했다.


미결된 해석


slept

정말 짧은 한 단어이지만, 브리튼은 원래 같은 행이었던 마지막 두 줄에서 morrow 뒤에 slept를 부르기까지의 사이에 반주만 진행되는 짧은 정적의 순간을 넣고 있다. 마치 의지가 꺾일 듯 말 듯 하다 결국 비극에 패배하고 낙담 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묘사인데, 리브레토 형태로는 구현하기가 꽤나 어려운 부분이다. 같은 행에 넣으면, 음악과의 동기화가 덜 되는 느낌인 데다 긴장감 없이 바로 스포하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이걸 또 나누면 서술어 하나만 따로 독립된 모양새가 어딘가 좀 부자연스럽고 리듬감이 깨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 통영 공연 측에는 자연스러움을 중시해서 둘을 같은 행으로 통합한 버전을 제공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까 음악과의 일체감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서 고클래식에는 분리한 버전으로 수정해 올리긴 했다. 뭐 어느 쪽이든 다 득과 실이 있는 거고 완벽한 해결책이 있기는 어렵겠지. 브리튼이라면 과연 어느 쪽 배치를 더 선호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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