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뒷모습까지 멋진 어른을 바라보다

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모두가 예상한대로 야당의 유력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장차관급 인사들에 대한 임명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 회사의 주무부처 장관이 새롭게 선임되자 사장님은 부쩍 자리를 비우는 일들이 많아지는 듯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방 국립대학교 교수 자리를 소개해줄 테니 사직서를 제출하고 조용히 나가라고 한다, 이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과제들을 싹 갈아엎고 새로운 사업계획을 가져오면 연임을 시켜줄 의향도 있다더라, BH(Blue House – 청와대)에서 후임자로 내정된 사람이 있어서 빨리 나가라고 괴롭히는 거다 등 온갖 추측이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사장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밥 사주고 말을 거느라 바쁘게 지냈고, 이대리에게 그러했듯이 수시로 한 명씩 불러서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나 소소한 선물들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사이트에 ‘사장 채용 공모’ 공지가 올라간 것을 보고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직 기관장이 아직 멀쩡하게 출근하고 잘 있는데 사회라는 곳은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건가 이대리는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임원추천위원회, 면접, 주무기관장 임명 등의 절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민감한 사항이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담당부서에서 전해듣기로는 형식적으로 후보자 몇 명의 이력서를 받아두고 BH에서 찍은 인물이 차기 사장으로 뽑힌 거라고 했다.

사장님의 마지막 출근일에도 회사는 소름이 돋을 만큼 평소와 똑같았다. 그저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할 뿐이었고, 오후 늦은 시간에 전직원이 강당에 모여서 퇴임식이라는 것을 하고 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회식 자리에서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어르신들은 라떼를 만들고 있었고, 술에 취해서 울고 웃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사실 사장님이 퇴직을 한다는 것이 이대리는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큰 이별을 겪고 감정이라는게 무뎌 지기라도 한건지… 자기를 아껴주던 사장님이 회사를 떠난다고 하는데 슬프지도 않는 이 상황에서 이대리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회식이 끝나자 사장님은 관용차 트렁크에 잔뜩 들고 온 시집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낭만적이지 않은 회사생활이지만, 그 안에서 여러분들 모두 나름대로 낭만과 여유를 찾고 즐길 수 있기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사장님은 떠났다. 직원들의 만류를 한사코 거절하고 관용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귀가하겠다고 했다. 어쩌면 운전기사님께 슬픈 내색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역시나 소탈한 사장님스러운 퇴근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리도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빠가 떠나고 사장님과 출근했던 날들을 떠올려보니 갑자기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서 밖에서 한참을 돌아다니고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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