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오늘도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는 동안, 이대리는 김팀장의 부탁을 떠올렸다.
며칠 전, 김팀장이 오랜만에 저녁을 먹자며 말을 꺼냈다. 이대리는 김팀장이 무슨말을 하려나 걱정이 앞섰다. 근래에 같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리, 내가 이대리 아끼는거 알지?"
"그럼요 팀장님. 잘 알죠."
"아마 전생이 있었다면, 이대리가 내 딸이나 내 동생이었을거야."
"...."
"이대리, 나 암이래."
"네?"
"아직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어. 우리 마누라도 몰라. 애들도 모르고."
"팀장님..."
"무섭다, 나 진짜 무서워... 우리 마누라, 자식들.....나 없이 못사는데... 나 외벌이인데, 우리 막내 대학가는것도 보고, 큰 딸 결혼식장에서 손도 잡아줘야 하는데...너무 무서워."
"...."
"이대리가 나 좀 도와주라.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이대리 아버님도 가신지 얼마 안됐고... 나도 같은 병이라.. 이런 부탁하기 너무 미안한데, 이대리 말곤 사람이 없어."
그 날, 결국 저녁은 단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김팀장과 이대리 모두 내내 울기만 했다. 김팀장은 최대한 본인이 현직에서, 병가나 휴직상태로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며 이대리에게 자신의 빈자리가 없는 것처럼, '그림자'처럼 티나지 않게 빈자리를 메꾸어 달라고 했다.
언제쯤 나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대리는 자신이 김팀장의 빈자리를 메꾸는 그림자가 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기 만을 바랬다.
병원을 가야한다며 몇 번의 휴가를 더 쓴 후, 결국 김팀장은 3개월의 '병가'를 신청했다. 병가 사유가 기록으로 남아야 해서 올라오는 진단서에는, '질병으로 인해 3개월간 요양을 권함' 이라는 짧은 문구만 기록되어 있었다. 김팀장은 회사에 소문이 나기 싫다며, 조용히 병가를 떠났다. TF장은 차상위자인 최차장이 3개월간, 김팀장이 복귀할 때까지 대신하게 되었다.
회사는 김팀장이 없는 사이에도 잘 돌아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이대리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세정 대리님이신가요?"
"네, 어디신가요?"
"저, 김팀장 와이프에요.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김팀장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이대리는 오후 반차를 급하게 신청하고 택시를 탔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김팀장의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가족적인 김팀장이 몇 번 아내와 아이들을 회사 직원들의 결혼식에 데려온 적도 있었고, 이대리의 아버지 장례식에도 함께 와서 조문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에게 이대리는 '세정 이모'로 불렸었다.
“저는 몰랐어요. 대리님. 애들 아빠가.. 그냥 간경화라고 해서 그런줄만 알았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둘이 1박 2일로 여행을 가자는 거에요. 생전 그런 적 없던 사람이. 애들 학원 라이딩해야한다, 야근한다, 주말 출근한다, 그 와중에 자기 대학원 가고 싶어서 준비하느라 얼굴보기도 어려웠던 사람인데.
무슨일 있나 싶었는데, 그래도 내심 좋다고 따라갔죠. 그랬더니 그날 저녁에 울면서 그러더라고요.
병원에 갔는데 암이라고 그랬다고, 무섭다고요.
알고보니 전에 다녔던 병원에서 간경화라고 진단했는데, 계속 악화되는 중에 병원에서 복수가 차고 있는것 같다며 다른 검사를 하자고 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검사하다가 다시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다발성으로 나타난 암이라 바로 진단이 안됐다고요.
다음날, 집으로 안오고 바로 그냥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끌고 갔어요.
거기서 싹 다시 다 검사하고, 치료받으려고요.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간 경화로 이미 여러 시술을 했던 터라...
지난주에는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에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시 덜컥 겁이 나서 응급실로 데려갔어요.
그랬더니 항암치료에 기존에 나빠졌던 간에.. 쇼크로 뇌출혈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애들 아빠는 중환자실에 있어요, 대리님.
저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한 주 지나니까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애들 아빠가 무슨 일 있으면 대리님한테 전화하라고, 연락처를 줬던게 생각나서...
그래도 대리님 이야기는 매일 들었거든요.”
병원에 도착하고, 세정은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다. 울지 말고, 가서 팀장님 손도 잘 잡아드리고,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