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사장님의 위로

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이대리, 이제 같이 핫초코 한잔할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잠깐 볼까?”


대통령 선거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누구도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장은 마음 한 켠으로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각종 리서치 업체에서 발표하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야당의 유력 후보가 압도적으로 지지율이 높아 정권 교체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벌써부터 정부부처의 ~카더라 통신과 대선 공약집을 통해 수집한 각종 정보를 분석해서 새로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TF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대리는 지방이전 TF에 이미 속해 있어서 이번에는 차출되지는 않았다. 아니, 여당은 이번 정권이 끝나기 전에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성과를 각인시키기 위해 오히려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들을 더욱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니 다행이라는 말은 취소!


원래는 먼저 이전을 하고 나면 추후에 검토하고 진행하기로 했던 과제들도 기한을 단축하고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예를 들자면, 직장 내 어린이집도 인근에 다른 공기업, 기관들도 모두 이전을 하고 나면 주관사를 정해서 같이 설립하려고 했는데 부지 확보, 수요 조사, 어린이집 설립 인허가, 위탁업체 선정, 비용 배분 방식, 근로복지공단 지원금 신청 등 모든 절차를 대상 기관들과 논의해서 사전에 확정하라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은 예시일 뿐 이런 종류의 과제들이 쌓여만 가는 상황에 이대리는 공황장애라는 질병이 왜 생기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업무시간 중 갑자기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는 컴퓨터, 서류뭉치 따위가 마치 파도처럼 천장까지 높게 솟구쳤다가 이대리를 잡아먹을 듯이 위에서 짓누르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김팀장을 포함한 TF 멤버들의 철야 근무가 잦아지면서 모두 상비약을 달고 살았고, 이대리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특히 김팀장은 급격히 야위어 가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사장실까지도 밤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비서도 퇴근하고 없는 늦은 시간에 사장은 본인이 직접 편의점에 다녀와서 군것질 거리를 사다가 지방이전 TF 멤버들에게 봉투 가득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사장이 이대리를 부른 것이었다.


“이대리, 지금 자취하고 있지? 지방 이전하면 어머니랑 동생도 같이 이사 갈 계획이 있나?”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동생 입시가 끝나고 난 이후일텐데 동생은 만약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자취를 하고, 저랑 엄마는 같이 지방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그렇지? 그럼 잘 들어둬, 우리 회사보다 먼저 지방에 이전한 공무원들처럼 인근 부지에 아파트가 개발되면 지방 이전기관 특별분양이라는 것을 진행할 거야. 앞으로 이렇게 낮은 가격에 집을 마련할 기회는 거의 없을 테니 꼭 신청하도록 해”


사장은 시에서 발표한 도시개발계획 자료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인데도 이대리는 한 번도 직접 찾아볼 생각은 못했다.


“A생활권은 먼저 이전한 공무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꽤 발전했지. 그런데 다른 생활권까지 개발되면 상권이 이동하면서 구도심이 될 테니 여기 보다는 B~D생활권이 더 살기에는 좋을텐데, 특히 B생활권은 여기 백화점 부지도 있고 큰 대로가 관통하는거 보이지? 이쪽에 공고가 나오면 꼭 신청해봐. 제휴은행 통하면 우대금리 혜택도 분명 있을테니까 물론 큰 돈 이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대리는 이게 갑자기 뭔소리인가 싶었지만 몇 가지 키워드는 잘 기억해 두었다. 특별공급, B생활권, 백화점 부지… 훗날 듣기로는, 사장은 늦은 밤까지 집무실에 남아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뭘 해주면 좋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악한 자취방에 혼자 살면서 아버지 병수발 드느라 고생하던 이대리가 지방 이전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파트 특별공급이 떠올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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