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이대리의 회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개인 사정에 대해 서로 잘 알고 있고 회사 밖에서의 교류도 잦은 편이다.
오죽하면, 모 팀장님은 아내한테 출장비가 따로 나온다는 것은 숨기고 개인 용돈 통장으로 받으면서 1~2만원씩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는데, 그 아내분이 다른 직원의 가족들과 모임 자리에서 출장비 이야기를 듣게 되는 바람에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용돈으로 낚시 용품을 샀을 뿐인데, 아내분은 ‘그 돈 모아서 딴 여자랑 데이트하는데 쓴 거 아니냐’며 이혼하자는 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대리가 보기에는 아마도 팀장님이 낚시 용품의 가격을 낮춰서 이야기하고, 출장비를 모은 돈으로 메꾼 듯한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금요일 늦은 저녁, 모 본부장님한테 전체문자가 왔다.
토요일 등산 모임에 참석할 사람은 아침 7시까지 어디로 오라는 내용이다.
이대리는 딱 한 번 참석해봤는데 등산은 명분이고 훤한 대낮부터 시작되는 술모임일 뿐이었다.
게다가, 주말 사적인 모임이라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각 자 얼마씩 각출해서 식비를 충당하다 보니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는 이대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답장도 안하고, 참석도 안하고 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이렇게 문자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 본부장님의 오른팔이나 다름이 없는 모 차장님은 꼬박꼬박 참여를 하더라.
잘은 모르지만 크게 될 사람이다. 본인의 집과 본부장님의 집은 전혀 방향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출퇴근길을 함께 한다는 소문도 있다.
회사에서 이쁨 받으려면 저렇게까지 해야하는건가? 다른 직원들은 3년마다 직무가 순환되면서 리더가 바뀌기도 하지만 차장님은 항상 그 본부장을 떠나지 않았다.
인사위원회에서 다른 본부장이 문제제기를 했는데, 상사의 신뢰를 얻어서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능력이니 딴지 걸지 말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다고 한다.
이대리는 김팀장의 빈자리가 허전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와 소문들이 귀에 들리는 것도 지치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어차피 곧 있으면 체육대회도 할 텐데 등산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주말에는 어디에 폼블럭을 붙여야 할지 고민했다.
밤에는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며 웃풍 때문에 발이 시린데 대체 그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없었다. 싱크대쪽에는 벽지를 안바르고 시멘트로 된 벽이 있는데 거기가 문제인가 하다가도 다시 보면 온 집안의 벽이 차가운 것 같기도 하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다이소에서 파는 폼블럭을 붙여서 효과를 본 사람들이 있다던데 제발 도움이 되기를…
“나 이번에 지방에 출장가서 출장비 2만원 나올텐데 만원은 급여계좌에 넣어주고, 만원은 내 다른 계좌에 넣어줘”
“아…팀장님 그럼 전표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에서는 그렇게는 안될거에요…”
“아니, 어차피 내가 받을 돈이고 내 계좌로 받겠다는 건데 왜 안된다는 거야?”
아내 몰래 출장비를 모으다가 들킨 모 팀장님이 회계팀 서사원을 괴롭히고 있다.
서사원은 회계팀의 파견직 사원인데 비용처리 등 행정업무 전반을 도와주고 있다.
나이가 어리고 파견직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직원들이 종종 있다.
그 때문인지 회계팀장님은 쌈닭이 되었다. ‘적당히 좀 하시라’며 몇 번 고성이 오가더니 상황은 마무리되는듯 했으나…
“서사원, 나 주말에 본부장님이랑 등산가서 업무 이야기했는데 이건 사후결제로 해서 업무추진비 처리해주면 안될까?”
…
“아오 씨 오늘 뭔 날이냐? 아침부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야! 너 그럴거면 등산 가지마. 서사원, 소금 좀 구해다가 문앞에 뿌려라. 재수가 없으려니 증말!”
참 평화로운 일상이다.
그 와중에 이대리는 서사원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파견계약 기간이 거의 만료되어 가는데, 지방이전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파견업체 소속으로는 최대 2년만 일할 수 있고, 앞으로도 이 회사에서 일하려면 파견업체 소속이 아닌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 바로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도 없는 것이 공공기관은 워낙 채용비리가 많기 때문에, 무조건 외부에 공고를 올려야 한다.
서사원이 파견직으로 아무리 잘 했더라도, 만약에 계약직 채용 경쟁이 치열하다면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째서 시간이 갈수록 이대리는 서사원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