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어느덧 전사 체육대회날이 되었다.
아침에 모든 직원이 대강당에 모여서 국민의례를 하고(회사 친목 행사에 국민의례는 왜 하는건지…), 새로 취임한 사장님의 훈화말씀이 이어졌다.
마치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 같은 이야기였는데 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시는건지 이대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건강한 체력을 길러야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일꾼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모두 전세버스를 타고 인근 운동장으로 향했다.
임원들은 체육대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상석에 줄을 맞춰서 앉아있다.
상의는 체육복을 입고 하의는 정장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복장의 중년 아저씨들이 쪼르르 앉아있는 모습이 참 기괴하다고 이대리는 생각했다.
본부별 대표선수가 출전하는 축구에 이어 달리기 경기가 끝나고 점심식사 이후에 단체 줄다리기를 해야하는데 회계팀장이 서사원을 다급하게 찾고 있었다.
“혹시 오늘 서사원 본 사람 있어요? 아침에 강당에서 안색이 안좋아보였는데…그 이후로는 안보이네요”
경기가 중단되고 모든 직원들이 서사원을 찾아 운동장 건물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회사 강당이나 화장실에 쓰러져 있을까봐, 어떤 직원들은 회사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임원이 크게 소리쳤다.
“체육대회는 현 시간부로 중단합니다. 모두들 일단 귀가하시고, 회사로는 절대 가지 않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어떤 이들의 비명과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서사원이 회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서사원을 찾아 회사로 돌아갔다가 최초로 발견한 직원은 그 충격에 잠시 기절을 했고, 경찰과 구급차가 와서 수습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현장에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는데 파견 계약이 끝나고 취업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공황장애와 불면증이 생겨서 언젠가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사원을 귀찮게 했던 모 팀장과 차장은 서사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지금은 본인들 탓이 아니라고 안도하고 앉아있다.
서사원이 그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먼저 다가가서 취업 준비라도 도와줬어야 했는데… 전에 계시던 사장님처럼 핫초코라도 한잔 들고 가서 말이라도 걸어줬어야 했는데… 사장님과 김팀장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서사원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후회의 눈물이 쏟아지는 한편 유서에 자기들 이름이 안 나왔다고 기뻐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니 이대리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속이 역해졌다.
지난 주의 일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 많은 직원들이 수시로 각종 수당이나 비용처리 방법을 두고 서사원을 귀찮게 했을 것이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하니 지금까지 어리고 잘 모르는 파견직 직원한테 시키면서 회사가 굴러갔을테고, 어쩌면 이 회사와 모든 직원들이 잠재적인 원인 제공자가 되었으리라 이대리는 생각했다.
인사팀, 회계팀장님, 최초 발견자, 몇몇 직원들은 사건 당일과 그 이후로도 탐문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김팀장님의 부재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데 또 누군가가 이렇게 떠나다니, 이대리는 대체 회사가 뭐길래 사람들이 망가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건지 허탈함에 머리가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