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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May 08. 2020

69. 근황토크

10년 만이다.

다시 돌난이 - 돌발성 난청과 이명이 심하게 찾아온 것은.


처음 이명이 찾아왔던 때는 대기업에서 죽음의 야근 터널을 지나던 시절. 그 시절 이명의 이야기는 아래에 남겨두었었다.


이명도 산재가 되나요 1편

이명도 산재가 되나요 2편

이명도 산재가 되나요 3편


외국계 회사로 옮긴지 5년, 회사 생활이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힘들어질 때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이명과 난청이 콜라보로 찾아왔다. 오른쪽 귀의 청력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지금도 오른쪽 귀는 이명과 함께 잘 들리지 않는다. 안그래도 사오정이었는데 큰일이다. 


10년 전에도 하지 않았던 고막주사 치료법은 마지막 치료법이었다. 엄마가 귀파개로 귀를 파주는 것조차 무서운 나에게, 처음 보는 사람이 두껍고 긴 주사바늘을 내 귓구멍에 찔러넣는 것은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두껍고 긴 철 침이 - 그건 바늘이라기보다는 철사에 가까웠다 - 내 귀로 향할 때, 나는 정말 모든 걸 포기할 뻔 했다.


주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철사가 고막에 이르기까지의 영원에 가까운 기다림이다. 귀 안쪽 깊숙히 어떤 이물감이 느껴졌을 때, 그리하여 그 주사기에서 흘러나온 기분 나쁜 액체가 입과 코로 동시에 스며드는 그 느낌은 차라리 안도감이다. 끝났구나. 의사는 주사를 놓자마자 "괜찮죠"라고 했고,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목으로 뭔가 넘어와요"라고 말했으며, 의사는 "삼키지 말고 15분만 그대로 계세요"라고 했다.


고막주사가 남겨준 것은, 공포에 비해 통증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과 (마취를 하긴 했다), 책에서 본 대로 입과 코와 귀가 모두 이어져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목으로 흘러드는 주사약물을 삼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언제나 한두번은 침을 꿀떡 삼키게 되었다. 이 고막주사를 이후에도 4번이나 맞았지만, 청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청력 테스트 결과는 좀 더 나빠졌고, 이명도 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스테로이드 치료 환자의 40% 정도만이 효과를 본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청력을 잃고, 병가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청력이 떨어진 것이 슬픈데, 한편으로는 휴직을 해서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기쁘다. 쓰고 보니 뭔가 슬프다.


예전, 신종플루가 창궐하던 시절의 뉴스가 떠오른다. 홍콩에 놀러간 관광객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어 한달간 호텔에 격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철 없는 직장인들은, 아주 살짝만 신종플루에 걸리면 어떨까, 그런 얘길 했었다.


외국계 회사의 제도와 직원 복지는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누리는 자율성은 일에 하루종일 메어있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경제적 자유를 당분간 빼앗긴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예전의 나는 조직생활도, 일도 매우 좋아했었는데, 왜 이제는 일이 싫어졌는지 모르겠다.

청력을 잃고, 짧은 휴직이 시작되었다.
당분간 출근하지 않는다. 
어서 귀가 나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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