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이프5 - 나의 서울라이프

by 킵고잉





5. 나의 서울라이프




어쩌다 도서관 서가에서 들고온 Steve Jobs 책.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잡스의 부모는 잡스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하고, '대학 졸업장이 있는 양부모'를 조건으로 걸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꽤 괜찮던 양부모 후보자는 입양 직전에 "잠깐! 남자야? 우린 딸을 원해~"라고 잡스를 거절한다. 또 다른 양부모 후보자가 나타나지만, 그들의 학력은 고졸/중졸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대학은 못나왔지만, 이 아이는 반드시 대학교에 보내겠다"고 각서를 쓰고 입양한다. 태어나서 두 번이나 "원치 않는 아기 - Unwanted baby"가 되었던, 누구보다 위태로운 소년은 자기만의 작고 사소한 Dots들을 거쳐 지금의 잡스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우연들이 엮여서 지금의 직장인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해서 엄마를 대동해서 만화가게에 갔다. 누워서 만화를 보다 잠드는 것이야말로 지고의 즐거움. 엄마는 만화가게 주인에게 이 아이들의 만화타령이 얼마나 귀찮은지를 강조하면서, 만화를 싸게 빌려주면 대신 자주 빌리겠다고 주인아저씨를 설득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내가 본 최초의 협상이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책 한 권값으로 두 권을 빌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둑질이 만화책이었다는 점도 고백한다. 그날따라 하필 보고싶은 만화는 세 권짜리였다. 만화를 보는 사람은 알고있을 것이다. 세 권짜리 만화에서 두 권만 보고나면, 마지막 3권때문에 미치고 팔짝 뛰게 된다는 것을. 나는 두 권을 빌리고, 마지막 3권은 등 뒤에 숨겨나왔다. 심장은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지만, 집에 와서 신나게 읽어제꼈다. 아주 꿀맛이었다. 하지만 3권을 다 읽고나자 걱정이 태산처럼 덮쳐왔다. 유년 인생 최대의 위기. 과연 빌리지도 않은 책을 어떻게 반납할 것인가... 그때의 고민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화의 추억 보기

미술시간이 좋았다. 미술시간 2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다 시계를 보면 종 치기 10분 전. 아아, 시간이 이대로 멈춰주었으면...! 고딩때 미술선생님이 화가쌤이었는데, 특별히 나에게만 자기 붓을 빌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혹성탈출에 나오는 화성인처럼 생긴 우락부락 쌤이었는데, 붓을 빌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쌤을 약간 흠모했었나. 미대를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엄마아빠는 "예술하면 못벌어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순순히 그 얘기를 받아들였다. 난 세상을 모르니까~.


대충 평범한 고딩시절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나니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미대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인문대 미술 동아리부터 찾아보았다. 하지만 시골에서 올라와 엄청난 서울 컬쳐샥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는 도저히 혼자 동아리에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학생활은 세련된 서울아이들만의 것인 것 같았고, 우린 지방생들끼리 대충 마이너리그 아싸가 되어 몰려다녔다. 그러다 어느 햇볓이 쨍하던 날, 나는 아주 큰 결심을 하고 미술 동아리방에 찾아갔다. 건물은 5층짜리였는데, 그 동아리방의 위치를 알아보니 6층에 있었다. 이게 뭔소린가 힘들게 찾아가보니, 5층짜리 건물에 정말 옥탑방 같은 6층이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살며시 문을 열자 햇빛이 가득한, 아무도 없는 화실이었다.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햇살이 가득한 그 화실은 다정하면서도 조금 쓸쓸해보이는 멋진 공간이었는데, 어쩐지 내가 들어가서는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냥 넋놓고 바라만보았다. 한발짝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다시 문을 닫고 나온 나는 다시 그 곳에 가지 않았다. 그곳을 한 번 더 찾아가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당시 미술을 좋아하던 동기애는 자기 꿈을 찾겠다며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다녔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그래픽 학원에 갔었는데, 상담을 받고 보니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역시나 그 후 그래픽 학원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 때 화실에 한발짝 들어갔더라면, 학원에 등록했더라면, 내 인생의 Dots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지만 그때 나의 용기는, 딱 한번 화실까지 찾아가볼 정도의 용기, 그래픽 학원에 가서 비용을 물어볼 만큼의 용기였다. 단편소설 중에 '그레이하운드의 비극'이라는 소설이 있다. 거기 나오는 배우지망생 주인공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할리우드로 가 배우가 될 꿈을 꾼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용기는 터미널에 가서 서성이는데까지였다. 끝내 터미널 창구에서 할리우드로 가는 표가 얼마냐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배우의 꿈을 잊고 평범한 인생을 살게 되는데, 그 후에도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갈 때마다 알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소설의 끝이다.


사회에 나와 취직을 하고 재미있게 회사를 다니며 그 사이 유학도 다녀오고, 프로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저 위의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Dots를 모아 모아 아이폰을 내놓은 날로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만명이 지옥의 야근터널을 거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던 노키아가 추락하고, 모토롤라, 소니에릭슨이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격동의 시대, 오직 소 같은 근면성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수만명의 근로자 중에 나도 있었지. 그냥 매일이 전쟁같았다. 지옥의 야근을 견디다보니 한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생기고, 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살고있지...?' '하루에 웃을 일이 없네..' '저 개자식...' '월요일은 개쓰레기요일...' 라는 쌍욕이 저절로 나오던 때, 허허허... 그 순간이 나에게 하나의 Dot이 될 줄이야. 뭔가 표현하지 않고는 못배길것 같은 그 때,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 '절망의 오피스레이디'.



지금은 회사도 다니고, 그림도 그린다. 회사를 그만둘 정도의 배짱과 용기는 없어서 여전히 나는 입구와 출구 어디선가 어슬렁거린다. 더 많은 용기와 도전, 모험을 하고싶다. 어려서 용기가 없어서, 배짱이 없어서, 뭐가 뭔지 잘 몰라서 Dot으로 이어진 적이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 지금이라도 더 많은 Dots들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망설이지 않고, 그 동아리방의 문을 활짝 열고 동아리방 안으로 성큼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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