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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Nov 19. 2022

해고위기, 오늘 내일 합니다 (1)

Week1 - 억만장자가 우리 회사 사장님?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웹소설처럼 제목을 달아본다.
'억만장자가 우리 회사 사장님?!'

어느날 갑자기 사장님으로 온 성격 드러운 이혼남 세계 최고 부자.
직원들을 해고하다는 말에 억울한 마음으로 사장님을 찾아간 여주는 사장님과 싸우는데 
사장님은 난데 없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너가 처음이야."하고 갑자기 폭풍러브.
우리가 아는 싱글 억만장자 사장님과 어울리는 스토리는 이런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소설이 아니다. 
현실에서 억만장자 부자 사장님이 회사에 오면 벌어지는 이야기 장르는 판타지 로코물이 아니라 자연 다큐멘타리에 가깝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은 해고나 퇴직을 경험할 것이다. 꽃이 피면 시들고, 태어나면 죽는 것 처럼,
 누구나 입사하면 1년 후든, 30년 후든 언젠가는 퇴사한다. 그래도 퇴사는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인줄 알았지, 한순간에 그 위기가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인생이 그런 것일까. 미래를 계획한다고? 만약 10년 후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면, 인생에 감사해야할 지 모른다. 꽤 친절한 인생이니까.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이 마무리되어 가는 느낌이다. 
'절망의 오피스 레이디'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 좀비처럼 회사에 다녔다. 일하는 보람도 가끔은 있었고, 가스라이팅으로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헛된 사명감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친구가 된 소중한 경험, 또 의지하던 동료가 등에 비수를 꼽기도 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사회생활 만랩을 찍은 인싸들도 만났다. 애증으로 점철된 그 곳. 하지만 실리콘벨리 테크회사로 이직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KPI를 달성하기보다는 
내 인생을 살고싶었다.

그리고 시작한 미국계 테크회사의 생활.
충격적인 것은 '자유'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회사원과 자유는 같이 갈 수 없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가능했다.  

아침 일찍 미국과 컨퍼런스콜이 있어 사무실 출근이 좀 늦어질 때, 이걸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하나 고민했다. 옆자리 동료에게 늦은 출근 소식을 알렸을 때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지각이라고 오해할까봐
),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앞으로는 이러지 말라고 하더라고.

휴가도 많았지만, 휴가는 재충전을 위해서만 써야하니 아플 때 쓰는 Sick leave는 따로 있었다. 일하다보면 가정을 만들거나 출산을 하기 어려우니, 시험관이나 난자 냉동을 통해 가족을 만들 수 있도록 회사에서 지원해준다. 
특히 매사에 서로를 cheer up 해주는 문화, 어메이징 푄퇘스틱 소리는 이전의 회사에서 욕만 쳐먹고, 물어뜯기는 게 일상이었던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순간처럼, 예상치 못했던 뉴스가 찾아들었다. 부자CEO가 
우리 회사를 산다고. 이 사람은 성격은 그지같고 지랄맞아도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니 찐팬도, 안티도 많은 사람.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지막 순간 인수합병은 이루어졌고, 어리둥절해 있던 사이,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인수가 된 다음 날. 기존 경영진들이 회사
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CEO가 먼저 사라졌고, CFO, CLO 높은 연봉을 받은 사람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인수 후 48시간이 지나자, 본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자들이 모두 해고되었다. 그 다음날에는 남아있던 다른 C Level들이 사라졌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보는 기분. 인디언 인형들처럼, 한 명씩, 두 명씩 사라져갔다. 굿바이 이메일을 보낼 틈도 없이.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도 그 전날까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처음 우리 조직을 이끌던 본사 조직장 S는 "어제 사장님과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다!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 ❤️"이라는 글을 남겼고, 그 다음날 회사를 떠났다. S가 떠난 후, 직무대행 J는 우리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S가 떠났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극복해가자. #OneTeam!" 그리고 그 다음날 그는 뉴욕 오피스에서 일하다가, 회사 보안경비가 찾아와서 회사 빌딩 밖으로 안내되었다 (미국은 이렇게 보안 Security가 데려 나가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직원들이 지켜보았다. 이제 전 직원의 50%에서 75%를 감원한다는 뉴스가 매일 보도된다. 주변사람들로부터 하나둘 안부인사가 오기 시작했지만,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분은 역시 부모님이다. 

집에서 매일 신문을 보시는 엄마가 어느날 전화가 왔다. 


하루가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었고, 또 하루가 지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최고의 자율성과 인간중심 문화를 외치던 회사는 불과 인수 일주일만에 오징어게임으로 변해갔다. 실리콘밸리는 아무리 경제위기라고 해도, 여전히 한국과 비교하면 Job market이 활발한 편이고, 여전히 많은 구인구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해고가 주는 충격파는 미국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늘 최고의 몸값과 주식으로 화려한 갓생 베틀을 하는 자부심 높은 사람들에게 해고는 더 충격인 것 같다. 미국 블라인드를 보면 하루에도 수십개의 글이 쏟아진다. 수면장애, 우울감, 불안, 해탈, 각종 욕들이 그 증거다.


테크 업계는 우리회사 뿐 아니라 많은 다른 회사들이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계속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구조조정의 표본이 되는 기업도 화제가 된다. 온라인 결제 회사 Stripe CEO의 감원 메세지가 인상적이다.


직원들이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이슈는 역시 위로금 패키지(Severance).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정말로 소박한 위로금으로 정평이 나있다. 두달이냐, 세달이냐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1년이냐 2년이냐, 아니다 애들 학자금까지는 보장해줘야 한다고 싸우는 한국의 기업들은 인류애의 상징, 그 자체다. 


조금 전에 회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직원별로 곧 잔류, 혹은 해고 통지를 메일로 보낼 예정이라고.

이 메일의 내용에 따라 앞으로 나의 미래도 달라지겠지.


오늘 새벽 1시, 

나도 메일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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