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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an 05. 2023

해고위기, 오늘 내일 합니다 (3)

Week1 -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해고 여부에 대한 통지는 11월 5일 토요일 새벽에 전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부터 회사시스템이 불안정했다. 자꾸 회사시스템에 접속했다가 튕겨나갔다가 했다. 


시스템보다 더 불안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의기양양 떠들어대던 나였는데, 막상 시스템 접속이 안되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지부진한 오랜 연애를 끝내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물이 나는 그런 마음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 시스템 접속중: '이제 회사는 언제든지 그만둘 준비가 되어있잖아!'

- 접속 끊김: 으악~!!! 엄마!! (심장 처얼~~~~~~~~렁)

- 황급히 시스템 재접속, 클릭 클릭 크크크킄ㅋㅋ클릭릭: (재접속 성공한 후) '휴.... 아직 살아있구나'

- 시스템 접속 다시 끊김: 으앙!!!! 어떡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 다시 접속이 되면: 휴~ 죽는줄 알았네~

이런 식이었다.



호기롭게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해두었지만, 이쯤 되자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퇴직인지, 아니면 어떻게라도 회사에 붙어있고 싶은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공포는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해고냐, 남느냐의 2가지 뽑기 중에서 내가 뽑는 카드가 해고일까봐 전전긍긍이었다. 미래에 대한 의지도, 결심도 희미해졌다. 


그리고, 카렌이 전해준대로 메신저에서 직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미국 동부부터, 서부, 일본, 싱가폴의 동료들이 메신저에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는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던 카렌까지 시스템에서 로그아웃되었을 때, 나는 패닉에 빠졌다. 미친듯이 회사 시스템을 새로고침 하고 있었다. 나는 튕겨 나가는 걸까, 아니면 로그인 상태로 있는 걸까. 


그때 나와 여러 회사를 같이 다닌 절친, 구월이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도 로그아웃 되었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모바일로 일을 보다가 튕겨나왔다고. 


"뇌물은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노트북에서는 직원윤리 비디오가 계속 플레이되고 있었다. 

나는 로그아웃 되지 않았다. 


많은 조직들이 통째로 영향을 받았다. 오랜 시간 이 회사에 몸담은 사람들은 적당한 송별을 할 시간도 없이, 그날로 끝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하다가, 외근을 갔다가, 혹은 출장지에서 그대로 로그아웃되었고, 그 길로 다시는 회사에 돌아가지 못했다. 누구나 회사를 지겨워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퇴사하고 싶어하지만, 이런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허무한 이별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친한 동료들이 떠나고, 나는 남았다.


남아있는 가장 늙다리 직원이 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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