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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an 15. 2023

해고위기, 오늘 내일 합니다 (4)

Week3 - 선택


11월, 전격적인 구조조정과 해고사태 이후 회사의 환경은 휙, 휙 바뀌고 있었다.

조직에서 리더가 중요하다는 말, 경영철학이 조직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말을 책에서는 보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반신반의 했었는데, 정말이었다.

강력한 리더는 한 조직을 통째로, 수천명, 수만명의 일상을, 그들에게 딸린 모든 식구들까지 좌우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 더구나 그 사람이 강력한 도그마를 가진 사람이라면.

매일 180도가 아니라 한바퀴 반 정도 달라지고 있었다. 정신줄을 잡을 틈도 없이 회사의 서비스, 회사 정책, 월급, 재택여부, 지원제도, 고용, 비용 관리,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갔다.

그렇게 2 주쯤 지났을 때, 메일이 날아왔다. 
역시나 금요일 오후.
제목은 '갈림길에서 (A fork in the road)'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치열해지는 경쟁의 시대,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하드코어로 오랜 시간을 일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내용. 그리고 그렇게 일할 각오가 된 사람만이 이 회사에 남아야하고, 그런 마음이 되어있다면 아래 '서약' 버튼을 누르고 회사에 남을 것이며, 그런 마음이 아니라면 강요하지 않으니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

그리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 사람은 3개월의 위로금과 함께 사직하면 된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선택의 데드라인은 그 다음날까지.  

24시간 동안 이렇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약을 하고 남아야하는지, 서약을 하지 말고 떠나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런 서약을 할 필요도 없다. 소같은 근면성, 그게 우리가 학창시절 내내 주입받아온 것 아니었나.

아마도 이 메일은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다소 방만한 몇몇 국가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메일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했는데, 내 마음이 뭔지 알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회사를 떠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내 마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말해주었다. 나는 데드라인 직전,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고민할 시간이 일주일이 주어졌더라도, 한달이 주어졌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1차적인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내가 버튼을 누르게 만든 것은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없이 나를 괴롭혀온 생존에 대한 불안. 누군가의 말처럼,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결과를 알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회사에 순종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이 익숙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권은 대부분 고민할 필요도 없이 회사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국 및 서양권에서는 매우 많은 직원들이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발적 퇴사를 선택했다. 

그렇게, 회사에 의해 떠난 사람들,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불확실의 시대, 불안정한 회사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조용한 퇴직 (Quite quitting)' 뿐일까 두렵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었지만, 이런 시기도 있는 것이겠지. 

그나마 단순 반복적인 일상이 나를 지켜주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이면 노트북을 열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재미없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

회사는 조금 더 쓸쓸해졌다.
그렇다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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