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긴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킵고잉 Feb 14. 2023

[9일동안의 교토 5] 오하라 호센인

호센인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와 아라시야마는 이전에 교토 여행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해치워버렸다.


이번에는 남들이 덜 가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교토 북쪽에 있는 시골마을 오하라.

오하라는 벚꽃이나 단풍이 들 때 아름답다고 하지만, 산젠인이나 호센인과 같은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절로 유명하다.


교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북쪽 시골길을 달리면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 오하라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관심이 있는 곳은 호센인. 7백년 된 큰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액자정원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무라이들이 몸을 바쳐 항전한 이야기가 얽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교토에서 출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당연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궁극의 고령사회답게 버스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버스에 탈 때마다, 누군가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것도 '하필 내 앞에 서다니... 할수없지.. 끄응..'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서 거동이 힘든 노인을 부축해서 직접 자리에 앉게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깜짝 놀랐다.

아, 이거 뭐지?

일본이 이렇게 따뜻한 곳인가?


아름다운 관광지도, 훌륭한 건축도 아니고, 교토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호센인으로 가는 동안 노인이 한 다섯분은 탄 것 같은데, 모두가 사람많은 그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았다.


일본인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런데 속으로 뭐라고 하든 말든, 진심이 아니든 말든, 자리를 양보하는 그 사람들이 고맙다.


겉과 속이 같은 우리들은, 친절한지 않은 속마음을 겉으로도 장전해 진심을 다해 핸드폰에 고개를 숙이고 있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앞뒤가 좀 달라도 친절한 사람들이 더 좋다. 일본에는 아직 경로사상이 남아있는 것인지...



버스는 시골길을 한참 지나 어느 작은 정류장에 우리를 내려준다.

사람들이 적고,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구글맵에서 알려주는대로 산길을 걸어가 호센인의 정문 앞에 다다랐는데, 이상하게 문이 굳게 닫혀있다. 오늘은 문을 닫았나보다, 실망한 채로 옆으로 난 길을 올라가다 보니 무슨 절 같은 곳이 나온다. 매표소에 안내하는 할아버지가 계시길래, 오늘 호센인이 문을 닫았냐고 영어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영어가 서툰 이 할아버지는 아니라고 하면서 갑자기 매표소에서 나와 자기를 따라 오라고 앞장서서 걷는다.


그리고 착각해서 지나친 호센인 정문까지 안내해주고 돌아간다.

하.. 일본 사람들 대체 왜 이리 친절하냐고...

이런 친절,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다.

우리는 모두가 먹고 살기 팍팍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게 도착한 호센인.

호센인의 액자정원


호센인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호센인은 '피천장'으로 유명한데, 천장에 사무라이들의 피가 얼룩져있다.


1600년대,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사무라이들에게 교토 남부의 '후시미성'이라는 곳을 지키게 한다. 이 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었고, 전력에서 비교가 안되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도쿠카와 이에야스도, 남아있는 사무라이들도 운명을 알고있는 채로 싸웠다고 한다. 남아있는 사무라이들은 적에게 항복하기보다는 끝까지 싸우다 할복하면서 전투를 끝냈는데, 이 사무라이들의 시체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혈흔들이 오래 남았다고 한다. 피가 스며든 나무바닥들을 뜯어 여러 절에 보내졌고, 호센인의 천장도 이 나무바닥으로 썼다고 한다.


피로 얼룩진 나무바닥이 천장으로 되어있는 이 무시무시한 정원은 고요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춥지만 않다면 한참동안 앉아있고 싶었던 곳.

봄이면, 여름이면, 가을이면, 이곳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옆에 있는 대나무통에 귀를 기울이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빌 게이츠가 이 곳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나 뭐라나.


아참, 이곳에서는 입장료에 말차 한잔과 디저트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





호센인에 있다보니 추웠다.

나오는 길목에 관광지 식당처럼 보이는 식당이 있었는데,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지나치던 와중에 식당안 사람들이 연기가 펄펄 나는 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고는 넋이 나간 것처럼 그곳에 들어갔다. 창가자리로 안내되어 햇빛에 몸을 녹이고 온메밀국수를 먹고나서야 마음이 푸근해진다.  




밤에는 제대로 된 저녁식사을 먹으러 가모강 근처와 본토초를 헤맸다.

한 5군데 이상 방문했지만, 예약 없이는 단 한 곳도 들어갈 수 없었다. 허허


충분히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지만, 우리가 들은 말은 모두 '스미마셍, 후루 부킹 (Full booking)'이 전부였다.

와, 어쩜 그리 사람들이 가득, 가득할까.






결국 본토초 헬로 돌리 (Hello Dolly)에 가서 우메슈를 한잔 하고, 9시 넘어 사람이 어느정도 빠진 후에 식당을 알아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헬로돌리는 라이브 콘서트가 중단되었고, 이전에 신명나게 머리를 돌리며 즐기던 관람객도 사라지고 없다. 그때 그 라이브 공연이 참 멋있었는데. 그래도 LP 재즈음악을 들을 수 있는 헬로 돌리는 여전히 괜찮은 곳이었다.



저녁 9시쯤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다가 겨우 자리를 찾아낸 작은 이자카야.


아마 회사의 회식을 하는 것인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동네 술집이었다.

맛있고 저렴했다.

우리에게 한 끼 식사의 기쁨을 충분히 준 곳.


여러분,

교토에 가시면 식당은 미리 예약하세요.

안그러면 밤새 길거리를 헤매다가

자칫하면 숙소에서 컵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먹게 된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9일동안의 교토 3] PCR 음성, 마지막 승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