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구글맵의 노예
목욕탕 Thoron Onsen Inari / 이나리 온센
어젯밤에 달리기를 할까 했지만, 늦은 밤 타국에서 혼자 달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행지에선 최대한 안전한 게 좋겠지. 아침 달리기도 좋을 것이다. 조용한 거리로 일찍 나가는 건 기분좋은 일이니까.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핸드폰 가지고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내 방에서는 히터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고, 옆방에서는 밤늦도록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연인이 투숙을 했을까?
그래, 맘껏 꽁냥대라.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저가의 호텔, 이토야몬은 어디로 보나 독신자용 아파트 같은 곳이다. 좋은 호텔이라면 기분이 좋았을 것 같기도 한데, 작은 사이즈에 시끄러운 옆방. 이거 이쁜 고시원인가... 이러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 8시다. 니조성 주변의 러닝코스가 좋다고 하니 니조성으로 가보자. 교토의 낮은 주택가, 아침의 골목길은 꽤 아름답다.
조금 걷다가 니조성까지는 버스를 탔다. 다섯 정거장 쯤 가니 니조성이 나온다.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아침 러닝이라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뛰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짐을 한쪽에 쭉 쌓아두고, 한 바퀴 뛸 때마다 와서 물을 마시고 다시 뛰러가는 사람들.
한바퀴를 돌면 2km 남짓.
원래도 느린 러너지만, 겨울이라서 한동안 달리기를 못했더니 아주 천천히 뛰어야만 했다. 달리기에서 속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경보 수준으로 뛰었지만, 그래도 30분 정도 지나자 땀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공복 유산소 운동이 짱이다.
우울하세요?
뜁시다!
교토시의 공식 여행사이트는 꽤 요긴한데, 거기에 니조성의 야간 달리기가 추천되어 있다. 이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니조성 달리기는, 밤에 달리기 한판을 하고, 바로 아래에 있는 동네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후, 바로 앞의 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라고 추천한다. 이건 정말 완벽한 일정. 이렇게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아 동선도 파악해볼 겸, 그쪽으로 이동해 본다.
여기가 바로 니조성 근처의 오래된 동네 목욕탕, 이나리 온센이다.
달릴 때는 몰랐는데, 걷다보니 춥다.
너무 추워서 집으로 가던 길에 근처 카페에 들어가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기로 결정.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카페에 들어가려다가 자꾸만 멈칫한다.
어디서든 구글맵의 컨펌을 받으려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틀림없이 좋은 카페였지만, 좀 더 걸어가면 평점이 0.1점 더 높은 카페가 있네?? 우왕~ 이러면서 눈 앞의 카페를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카페로 가보니 아침식사가 다 팔렸단다. 또 주변의 카페를 찾아 다음번 높은 평점의 카페에 가보니 거긴 또 문을 닫았다.
와, 손이 얼었네.
이젠 평점 따위 상관없이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그 지역에는 카페든 식당이든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추운 한 몸 따스하게 맞아줄 곳이라면 아무데나 그냥 오케이!
하지만 이미 지나쳐버린 카페는 돌아가기엔 너무나 멀다....
(잠깐만... 이거 스쳐지나간 남친이나 인생 얘긴가??)
집 쪽으로 덜덜 떨며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페.
내가 지나쳐온 카페와 비교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카페.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이 곳은, 소박하지만 과하지 않은 웃음으로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곳이었다.
언제부턴가 구글맵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백문이 불여구글맵. 눈 앞에 장소를 두고도, 맨날 스마트폰 속 구글맵만 연구한다.
밥 한끼, 커피 한 잔 마실 때도 구글맵의 평점과 리뷰, 사진까지 꼼꼼히 살펴본다. 그러다보니 우연한 발견, 기대치 않았던 즐거움 같은 것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저 안전함 만이 남았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채로. 그리고 무엇보다 피곤하다.
하지만 구글맵을 켜지않아도 소박하고 기분좋은 카페를 찾았잖아. 구글맵 따위 필요없는 걸. 이젠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 구글맵 따위 꺼버리자. 흥!
가만...
근데 이 기분좋은 곳의 구글맵 평점은 도대체 몇점이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
참고로 이 기분좋은 카페의 평점은 4.7이었음.
역시 신뢰할만한 구글맵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