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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May 06. 2023

[밴쿠버] 한달살기의 시작

8년 다닌 회사,

호다다닥 퇴사하고 어제 밴쿠버 한달살기 왔습니다.


퇴사하겠다고 노래~노래~ 한 게 거의 십년인데, 인생은 알 수 없는 시기에, 알지 못할 방향으로 흐르는가 봐요.


워낙 퇴사를 줄창 떠들어서 뭐, 저도 이게 진짜 그만두려는 것인지, 아니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인지 헷갈리면서, 실제로 퇴사를 할지 말지는 모르겠다, 설마 내가 진짜 퇴사를? 뭐 이러고 있었는데요.


아니 순식간에 회사가 인수가 될 게 뭡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구조조정, 정리해고가 불어닥치는 건 뭡니까.

외로운 회사 생활에 연봉이 30% 줄어드는 건 또 뭐란 말입니까.


회사 안팍에서 굉장한 스트레스가 몰아치자,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어느날 회사에 숨어있던 숨또라이가 대폭주하는데, 하필 그 대상이 저였습니다. 허허허..

나이많은 꼰대도 참기 힘들지만, 나이어린 꼰대의 행패는 정말 못봐주겠더군요.


드러워서 못해먹겠다, 지금이다!!! 하고 때려쳐버렸습니다.

회사 떠나니 상사도 그냥 동네 아저씨일 뿐이었고요.

다음에 만나면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네요. :)


3월에 퇴사 어나운스 하고 인수인계 마치고, 어찌저찌 하다보니 5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밴쿠버에 왔습니다.

퇴사하면 꼭 장기여행을 하고 싶었거든요.


남아있는 마일리지 탈탈 털어서 플렉스 해봤습니다.

많이 봤던대로, 음료도 최대한 깔아봅니다. 후후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

수없이 출장을 다녔지만, 막상 한달이상을 여기서 소속도 없이 혼자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옛날, 비행기도 처음 타온 언니, 친구들이 두려움에 떨며 이곳에 왔던 것을 상상해보니, 애틋하기도 하더라구요. 나이먹고 경험할 만큼 경험한 나도 긴장되는데, 그들은 어땠을까 하고.


택시타고 던바에 있는 에어비앤비로 이동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주택가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던바의 주택가


와, 너무 아름답다~ 한껏 들떠서 에어비앤비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헐, 이런!

왜 이 집 마당에는 이런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ㅠㅠ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왜 트렁크 바퀴는 부서져버리는 걸까요?


다행히 방은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묵는 방
에어비앤비 부엌


그런데 말입니다~


틀림없이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부인과 남편이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이었는데 (가족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해서 신청함), 막상 와보니 왜 남자 혼자 살고 있지요....?


옆방에는 Judy라는 상하이에서 온 여자가 묵고 있어서 다행이다~ 했더니만,

이 여자 또 내일 체크아웃한다네요.

뭔가 계속 반전에 반전입니다.


그럼 내일부터 이 집에는 마이크와 저, 단 둘이 지내게 되는 건가요. 게다가 왜때문에 샤워실은 잠금 장치가 없는 것일까요.....


도착 후 동네 산책을 할 겸 키칠라노 근처까지 가보았습니다.

키칠라노 근처의 요트선박장


밴쿠버 카페는 모두 6시면 문을 닫네요.

7시까지 하는 카페 (Caffe W)가 있길래 와봤습니다.

라떼와 시나몬롤. 건너편 연인들이 아주 짝짜쿵 난리가 났습니다.


6시 넘으니 손님이 저 혼자였습니다.

주인장이 썬글라스 끼고 의자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문닫기 10분전에 조용히 짐싸서 나오는데, 주인이 나가는 나를 보고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들리는 영어가 피곤해서 수줍은 아시안의 미소 던지고 그냥 나가버릴까 하다가, 못들었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했더니 예상과는 다르게 꽤 다정한 말이었습니다.

"오늘은 문 일찍 닫지 않을거야. 더 머물고 싶으면 원할 때까지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경계심 많은 여행자는 낯선이의 친절이 두렵습니다.

조금 고민하다가 It's okay, thanks. 하고 나오는데 주인의 표정은 조금 실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새 아시안 오리엔탈 미녀에게 빠져버렸군... ㅉㅉ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는 법,

조금은 경계를 늦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문 안잠기는 샤워실이 있는 Mike의 집에서 Mike와 둘이 있는 것만큼은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ㅎㅎ ㅠㅠ


이상 오늘의 밴쿠버,

한달살이의 첫날이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너무나 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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