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비상연락망
첫 날의 강렬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꿀잠에 빠져들은 후, 두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폭신한 침대에서 굿모닝~!
노트북과 책들을 잔뜩 펼쳐두고 일을 하고 싶은데, 근처의 카페들이 마땅해보이지가 않습니다. 역시 카공족들을 위한 최고의 성지는 넓디 넓은 테이블이 많은 한국인가요.
그래서 관광지에 꼽힌다는 다운타운의 밴쿠버 도서관 (VPL: Vancouver Public Library)에 가보았습니다. 뭐 어떻게 해놨길래, one of best 관광지란 말인가, 하고요. 듣던바대로 와우, 그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콜롯세움인줄 알았어요. 공부나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공간들도 너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와, 정말 여기 시민들의 문화공간이구나 싶었어요. 한국의 도서관은 노트북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뭐랄까 좀 엄격한 느낌이 있는데, 여긴 모든게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도서관에서 ChatGPT에게 '밴쿠버에서 노트북 하기 좋은 곳 어디야~'라고 물어봤더니, 너무 잘 설명해주면서 도서관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Chat GPT가 여행정보도 너무 잘 찾아줍니다.
(과연 인간의 설 곳, 어디인가~ ㅠㅠ)
서비스센터에 물어보니 여행객도 $30을 내면 카드를 만들수 있고, 책도 자유롭게 빌릴 수 있다고 하네요. 30달러면 뭐 책한권 값 아닙니까? 거저죠, 거저.
일을 좀 하다보니 졸려서 엎드려서 좀 잤습니다.
자다가 일어나보니 앞자리에 앉았던 여자분도 저랑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자고 있더라구요?
역시 도서관에 오면 졸리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군요.
너무 졸려서 네이버카페에서 약속해둔 테니스 라켓을 사러 갔습니다.
이번 벤쿠버 여행은 욕심부리지 말고 (1) 다음책 원고준비, (2) 운동 이렇게 딱 2가지 목표를 잡았거든요. 근처에 테니스 코트도 넓직한 곳들이 너무 많고,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면 좋을 것 같아서 바로 Community center에 한달짜리 테니스 레슨을 신청했습니다.
주말에 수업이 있어서 라켓이 필요하니 호다다닥 인터넷에서 $10짜리 중고 요넥스 테니스라켓을 사기로 결정. 다운타운에서 약 1시간 거리의 버나비까지 픽업을 가야했는데, 택시타고 가면 30불 이상이 나오니까, 중고를 사는 의미가 전혀 없더라구요? 그래서 지하철 버스 3번을 갈아타고 산넘고 물건너 다녀왔습니다. 회사 다닐 땐 시간이 가장 비싼 거였는데, 이젠 시간이 가장 저렴한 시절이 된 아이러니~~
그렇게 구매한 중고 라켓.
노란색 부직포 봉다리에 소담하게 쌓여있는 모습이... 수줍어 보이네요. ㅎㅎ (테니스 가방 따위 필요없음)
근처에 H마트가 있길래, 집에 가면서 양념치킨을 하나 샀습니다.
밴쿠버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혼자 먹는 치킨은.... 꽤 차갑고 맛이 없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아참, 춥고 비오는 밴쿠버의 하루를 따뜻하게 해준 사건도 있었습니다.
제가 남자 혼자 하는 에어비앤비에 있는 것이 걱정이다~ 했더니만, 글쎄 헬로밴의 어떤 분이 비상연락처가 있으면 좋을텐데... 하셔서 제가 급한 일이 있으면 영사관에 전화하면 될까요? 했더니만, 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전번을 주셨어요. ㅠㅠ
이거 거리에서 잘생긴 남자에게 번호 물어봐서 연락처 받은 것보다 더 감동적.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서울에서 온 저에게 낯선 이의 친절이라니...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어제의 가장 인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저에게도 밴쿠버에서 비상연락할 지인이 생겼습니다. ^______^
물론 연락할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