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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May 23. 2023

[밴쿠버] 한달살기7 - 내 숙소의 모든 것

생각도 못했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굿모닝~


늘 집이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집 때문에 고통받고, 또 집 때문에 행복해하잖아요. 집에서 잠만 자는 하숙생도, 집에만 붙어있는 집돌이도 집은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주니까요. 꼭 비싸고 럭셔리할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비쌀수록 나에게 꼭 맞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시세보다 저렴하게 일주일간 묵은 UBC 웨스브룩의 아파트. 아, 그곳은 진정한 낙원이었습니다. 보안도 철저하고 시설도 깨끗한 완벽한 곳. 오직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분위기의 집주인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외에는 밴쿠버에서의 남은 기간을 다 보내고 싶은 곳이었죠. 주인이랑 같이 생활할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Jenny는 일주일 외에는 더 묵을 수 없다고 했고,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경고] 에어비앤비나 렌탈을 할 경우, 하루 벌금 100만원!’이라는 공고를 보고나서 왜 이 곳이 에어비앤비에서 사라졌는지 이해했죠.


웨스브룩의 아파트


나그네는 곧 새로운 숙소를 구합니다. 


이 집은 Jenny의 아파트보다 좀 더 비싼 곳. 이사에 지친 저는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사겠다고 결심합니다. 까짓거, 퇴직금 흥청망청 써버리자~ 어차피 회사 다닐 땐 돈 쓸 시간도 없으니까 지금 쓰자! 음하하하하~!!! 


체크인을 할 때, 이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틴을 직접 만났는데, 내가 외국에서 만나본 가장 프렌들리한 캐나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인생~ 인생은 나그네길~  


막상 아파트에 들어가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지난번 아파트보다 더 비쌌지만, 더 작고 땅보다 약간 내려간 곳 (반지하까지는 아니지만…)에 도로에 면해있는 스튜디오. 집도 그저 그랬지만, 무엇보다 현관문이 문제였습니다. 문이 고장이 나서 제대로 열고 닫기가 안되었어요. 한번 나가면 들어오기 힘들고,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독 안에 든 쥐... 


크리스틴은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저에게 현관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문고리를 돌리고 있는 힘껏 위로 들어올린 후, 끼영차~ 힘껏 밀라는 가이드를 주었지요.


거실


하지만 그녀는 키가 큰 거구의 서양인. 체구가 작은 저는 이걸 들어올리기 너무 힘들었을 뿐 아니라, 왜 문을 열기위해 이 고생을 하나, 억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 현관은 햇볕을 잔뜩 받은 오후 - 저녁이 되면 문이 완전히 내려앉아서 에 들어올 때마다 밖에서 사투를 벌여야했습니다. 어스름이 내리는 타국의 거리, 도로에 면한 아파트에서 현관문과 씨름하는 여자… 이거 진짜 화딱지 납니다. 제가 컴플레인을 하자, 크리스틴은 사과의 메세지와 함께 방에 2만원짜리 커피 쿠폰을 두고 갔더군요. 


크리스틴의 회사는 이런 아파트를 4 - 5개 정도 운영하고 있었는습니다. 저는 혹시 같은 조건의 다른 아파트로 옮길 수 있을까 하고 검색해보다가 본격적으로 빡치게 되는데요. 제가 비싼 정가를 그대로 주고 현관문제를 몸빵으로 해결하는 동안, 정상적인 아파트들은 전격할인을 하고 있더군요?!? 야야!!


여보쇼!

백수의 여행객에게 싸게 주지는 못할 망정, 이게 무슨 짓이오! 저는 심각하게 컴플레인을 합니다. 


“이 집은 렌트를 할 준비가 안되어있는 집이다. 그러면 다른 집보다 싸야하는데 심지어 더 비싸다. 이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난 나가겠다. 그러니 커피쿠폰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라”라고.


크리스틴은 그 다음날 아침 현관을 고쳐주겠다고 하면서, 저에게 모닝커피 한잔을 마시자고 하더군요.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아침에 만났어요. 역시나 슈퍼 프렌들리한 그녀는 저에게 사과를 하며, 자기가 회사에 말해서 너에게 꼭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겠대요


크리스틴과는 말이 잘 통해서 심지어 한시간동안 인생 얘기까지 하게 됐고, 부모님 건강 얘기를 하다가 눈물까지 쏟고, 우리는 진한 포옹을 하고 헤어집니다. 허허허허…. 이게 모냐 진짜. 암튼 뭐,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이사에 지친 저는 할인 좀 해주고,  고쳐주면 그냥 지낼 생각이었어요. 크리스틴과도 친해졌구요.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크리스틴은 “회사에서는 현관을 이미 고쳤고, 너에게 사과의 의미로 커피쿠폰을 주었다. 정 체크아웃을 하고싶다면 환불해주겠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워낙 성수기로 들어가니까 디스카운트가 하기 싫어서 그랬는지… 하지만 그들도 당장 손님을 받기 어려웠을텐데, 왜 그랬을까 이해가 안되네요. 


더이상 짐싸기 싫었지만, 이 시국에 제가 오케이~! 커피 쿠폰이면 충분하지 모! 네버마인드!~! 이러고싶지는 않더군요. 이건 진짜 갈 데 없어도 곱니다. 저는 “알았다. 노력해줘서 고맙다. 그럼 나는 체크아웃한다.”라고 하고 또 부리나케 숙소를 알아보고 옮길 준비를 합니다. 여행의 신이시여~~ 저를 보고있나요??


다만, 그들이 약속한 환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외국인들이란 컴플레인을 해야 그제서야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들만 믿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체크아웃했다가, 응 생각해보니 안되겠어~ 이러면 나중에야 분통을 터뜨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건은 크리스틴만 믿지 말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해결하자고 고객센터에 연락을 합니다. 이번에 에어비앤비의 AS를 제대로 경험했는데요. 일단 이들이 24시간 투입되어서 도와줍니다. 시간별로 한국인이 대응을 하다가, 외국인에게 다시 연결해서 끊김없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에어비앤비 고객센터, 칭찬해!)


물론 과정은 복잡합니다. 증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현관문이 안열리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줘야하고, 충분히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뭐 사실대로 리포팅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현관이 문제가 있어서 집에 들어가기 위해 고생하고 있고, 현관을 고치겠다고 쇠를 갈아낸 흔적이 집 문간에 널려있어서 제가 이걸 청소를 해야했고… 이런 것들을 가감없이 리포팅을 합니다. 


여러번의 DM과 전화 끝에 에어비앤비가 남은 기간의 환불을 확정해주었습니다. 보통 에어비앤비는 집주인과도 확인을 해서 양쪽의 말을 들어보고 판단하지만, 저의 경우는 비디오를 보고 환불을 확정합니다. 그리고 이전의 3박 4일 동안의 불편을 고려하여, 그 기간동안의 숙박비 30%를 추가로 환불해줍니다. 그리고 뒤늦게 숙소를 구해야하는 상황 (즉 싼 숙소는 이미 남아있질 않은 시점인거죠)을 고려하여 일정 금액을 보전하는 쿠폰을 주죠. 이렇게 되자 이번 환불로 날린 에어비앤비 서비스fee나 세금이라는 손해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해서 그 집에서 계속 있었다면 베스트였겠지만, 이렇게 나그네 인생의 위기는 정점을 맞게 됩니다. 급하게 집을 구하느라 제대로 된 콘도나 에어비앤비가 남아있질 않았습니다. 뒤늦게 인터넷에서 본 게스트하우스에 방 하나를 구해 들어가게 되는데, 이 집은 UBC 북쪽 해변가에 위치한 굉장한 부촌 단지에 위치한 낡은 나무집인데 진짜 방 하나만큼은 공주방이라서 여러 단점들 (왜 다들 문이 안 잠길까? 덜커덕 덜커덕...)에도 불구하고, 소공녀가 된 기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낮에는 강같은 평화.


밤에는 노심초사.

제발 문 좀 잠그게 해죠~~


차암… 집 떠나면 고생이다~~

이상, 나그네의 숙소 분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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