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회사에 안가는 자연인의 아침,
굿모닝~!
오늘은 새 숙소에도 적응하고, 동네에도 적응하고, 특별한 것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공백의 하루.
어느 레벨에 다다른 백수들이 하는 행동이 있대요. 뭐냐하면 누워서 천정 보기, 벽지 무늬보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자연스럽게 누워서 벽지를 보고 있더라구요? ㅋㅋㅋ 신기한 일입니다.
벽지나 천장의 무늬를 꼼꼼히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연인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3주차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저는 벽지 살피기를 멈추고, 운동을 빡세게 한 후 혼술을 하기로 합니다. 오며 가며 보았던 근처 UBC 수영장이 생각납니다.
찾아보니까 시설이 아주 좋아보여요. 1층에 있는 것도 좋고, 풀도 50m와 25m 풀이 있다는군요. 오늘은 50m 풀만 연다는데, 모 열심히 하면 50m 정도는 갈 수 있지. 수영이라면 어느정도 하니까, 여기서 또 나의 수영실력을 뽐내야하겠군... 후후.... 아이참...
밴쿠버는 늘 반전의 연속이잖아요.
막상 룰루랄라 들어가서 저는 풀에 들어가지 못하고 30분을 그저 바라만 봅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이 수영장의 깊이. 제일 얕은 곳이 2.4m부터 시작이더라구요. 왜 길이만 얘기하고, 정작 중요한 깊이는 안내가 없냐고요. 참고로 저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풀장에서 혼자 수영하다가 빠져서 "헤... 헬ㅍ미!!!" 하며 죽다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스페인 여행편 참고)
그래, 내가 비록 물에 떠있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건 할 수 있지. 머리에 물도 한방울 안튀는 우아한 수영은 못하지만, 수경을 장착하고 물 속에 머리 푸욱~ 담그는 선수 수영은 충분하다고~. 이왕 들어왔으니 한 번은 물에 들어갔다 나오자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불안합니다.
지난번처럼 수영장에 빠져서 사람살려~ 소리, 소리치진 않을지… 어떻게 안전하게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주위에 보니 아까부터 왔다갔다 하던 뽀글뽀글 머리의 안전요원 lifeguard가 보이더라구요. 금발의 뽀글이가 근처에 왔을 때 그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익스큐즈 미~. 나 지금 수영하려고 하는데 여기가 생각보다 깊고 멀다. 수영은 할 줄 아는데, 혹시 나 좀 봐주겠니? 내가 혹시 중간에 빠지면, 좀 구해주련???"
좀 당황스런 주문인가요. ;;;
뽀글이는 "그래. 라인 옆에서 수영하다가 혹시 빠질 것 같으면 옆에 라인을 잡아. 내가 지켜볼게."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안고 그냥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두근두근! 수영하면서 보면 바닥이 보이잖아요. 막상 위에서 보니까 그렇게 깊어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나 수영 잘 되네. 후후.. 하면서 수영을 계속 했죠.
문제는 50m가 꽤 길다는 겁니다.
한참 수영을 했는데, 너무 멀다는 생각과 함께… 이거 빠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그 순간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여유롭게 수영하던 저는 그만 또 다시 어푸, 어푸푸.... 패닉 어택. ㅋㅋㅋㅋ 하, 진짜. 미치겠다.
그러고는 저는 동앗줄처럼 옆의 라인을 부둥켜안죠. 그 와중에도 이 라인이 또 헐거우면 큰일난다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듭니다. 라인은 탱탱한듯 헐거운듯 묶여있었는데요, 조금만 아래로 움직여도 열이 받습니다. "야 이 ㅅㅂㄹ들아!! 수영장에서 라인은 탱탱하게 묶어놔야지!!!! 누구 죽는 꼴 보고싶어??!!!"
휴~~ 여러분, 라인을 붙잡을 땐, 라인이 탱탱히 묶여있는지 주의하세요. 하여간 라인을 어와둥둥 부여잡고 주위를 살피니, 저는 대략 3분의 2 정도까지 왔더라구요.
줄을 잡고 이동하려 했지만, 발이 땅에 안닿잖아요? 이동도 안됩니다. 엄청 힘들게 옆으로 이동이동 했는데, 한 30cm 왔나... 이렇게 해서는 여기서 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영으로 갈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는 신세... 다시 물에 머리를 쳐넣고 수영을 시작, (남들이 보면 올림픽 수영 선수인줄) 다행히 끝까지 수영을 했습니다.
도착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저 멀리 부탁했던 라이프가드가 나를 지켜보지는 않고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켜보지 않았던 건가? 그때 뽀글이가 다가왔습니다.
가드: "어땠어?"
나: "응 수영하긴 했는데, 중간에 패닉와서 라인 잡고 있었어. 너 나 봤니?"
가드: "응 봤어. 너 수영 잘하던데. 중간에 줄 잡고 있는 것도 봤어."
나: "응, 나 수영 할 수 있어... 근데 너무 깊어서 못하겠더라.... "
뽀글이는 수영을 하는데, 또 깊어서 못한다는 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죠. 강에서 수영을 배운 저희 아빠도 수영은 깊은 곳에서 해야 잘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더이상의 수영은 무리다 하고 수영장을 나왔습니다. 한번 했으면 됐지 모.
20년동안 수영을 했는데도 깊은 곳에서는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더라구요. 수영장 옆에 있는 맥주집에 갔습니다. 원래 오늘은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기분좋게 한잔 하려고 했는데 자괴감에 쩔어 마시게 된 혼술.
술 한잔 마시고 얼굴 시뻘게져서 한참을 혼자 앉아있는데, 뽀글이가 친구들이랑 들어오네요. 저를 보고 살짝 웃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딸딸~ 해져서 돌아가는 길.
노을이 참 예쁘군요.
이상, 생존수영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게 된,
오늘의 밴쿠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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