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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un 13. 2023

[밴쿠버 한달살기 17] 한달살기를 마치고

모두 굿모닝~

밴쿠버 한달살기가 끝났습니다.


예전에 혼자 스페인 여행을 3주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스페인의 온갖 구석구석을 많이 다녔어요.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라나다, 네르하, 론다.... 그때가 10년 쯤 전이었는데, 지금보다 체력도 좋고 더 젊고, 모든 것이 좋을 때였는데도, 그때 여행에서 많이 지쳤었어요. 그리고 좋은 곳을 많이 봤는데도, 이상하게 기억에 크게 남아있지 않네요. (그때도 수영장에서 잘난척하며 수영하다가 빠져서 사람살려~ 외친 기억만 생생... ) 


그런데 이번 밴쿠버는 여러 사건사고가 있긴 했지만, 평화롭고 즐거웠어요. 그때는 회사에서 휴가를 받았을 때라, 압박이 늘 함께 했고 강박적으로 뭔가를 즐겨야한다고 생각했다면, 밴쿠버여행은 힘을 뺀 여행이라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일해야한다는 압박 없이 천천히 한 도시를 즐겨서인지도요.


한달이 지났으니 총평을 하자면, 저는 좋았습니다. 


밴쿠버 여행의 큰 단점이 여행이 끝나도 자꾸 안돌아가려고 한다는 거라던데, ㅎㅎ 그게 단점이라면 저 역시 아주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제서야 왜 언니나 친구들이 어학연수 갔다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서 살겠다고 외쳤는지 이해가 되네요. 물론 그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 그 모든 것은 꿈으로 남았지만, 그때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던 저는 이렇게 중년이 되어(?) 밴쿠버에 와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여기서 살 수도 있다니까요! (어떻게?? 미용기술이라도 배워야하나...?)


늙그막에 긴 여행을 왔는데, 밴쿠버는 저를 반겨준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회사를 다녔어요.

늘 그만두고 싶어했지만, 내 발로 걸어나오기는 참 쉽지가 않았어요. 회사를 좋아했었고, 조직생활도 좋아했고, 승진도, 돈 버는 것도 저는 좋아했습니다. 어디 가서 내 회사가 뭐라면 사람들이 오~~ 좋은 회사! 라고 말하는 것도 유치하지만 좋았고, 엄마아빠가 내 딸 어디 다닌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저는 내심 좋아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변화가 필요한 시기는 필연적으로 오더라구요. 


한 번도 회사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어서 퇴사가 두려웠습니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니까, 내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퇴사 고민만 10년 이상 한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런데 인생은 알지 못할 순간에, 알지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그렇게 10년동안 고민한 퇴직을 불과 몇 달만에 실행하게 되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나서도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 불안이 채 가시기 전에 얼른 더 큰 혼란 속으로, 더 큰 트러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숙소도 처음 3박만 예약하고 덜컥 떠나온 밴쿠버의 한달. 정신이 산란한 저의 모든 고민을 날려준 한달살기의 생활들. 건강이 안좋으신 엄마를 형제자매에게 맡기고, 혼자 떠나온 여행. 한국에서는 엄마도 아프고, 형제자매도 고생하는데 나 혼자만 좋자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


그 모든 것을 밴쿠버는 그냥 안아준 것 같아요.


거대한 자연이, 햇볕이, 바람이, 바다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이... 한달 살면서 생긴 수많은 좌충우돌이 나의 마음속의 근심을 털어내고 그냥 하루 하루를 무언가에 몰두한 채 살아가게 해 주었어요. 


이제 다시 밴쿠버에 온다면, 그땐 조금 더 익숙하게 살아나갈 수 있겠죠. 여행이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저는 다시 밴쿠버에 꼭 돌아오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를 복창하고 있네요...) 


여행기를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안녕, 살인영화 보던 집주인 마이크

안녕, 나를 쏘큣걸로 만들어준 도서관 청년

안녕, 수영장 뽀글이

안녕, 나를 꼭 안아줬던 크리스틴

안녕, 인도인 N씨

안녕, 우연히 만난 친구 예일타운 샤라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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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녕, 밴쿠버.















그동안 제 여행기를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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