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입원하시면서, 엄마와 아빠 두 분을 간병해야 하는 이중고가 시작되었다.
며칠동안 엄마아빠를 돌봐드리니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부모님께도 사랑을 줄 수 있는 법.
오늘은 무리를 해서 나를 아껴주기로 한다.
아침에 보호사가 오자마자 출근해서 바로 사우나로 직행한다.
멀지 않은 곳에 알카리성 온천수를 자랑하는 사우나가 있었다.
이름하여 '기린 온천'.
출근이 바쁜 평일 아침, 9시에 목욕탕 가는 기분은 조금 설렌다.
막상 가보니 귀여운 이름과는 다르게 아주 찐로컬 바이브가 진동하는 곳이다.
그동안 좋다는 곳, 럭셔리한 스파에 꽤나 많이 다녔다.
하와이, 발리, 길리, 코사무이, 푸켓, 나트랑, 다낭, 세부, 일본 온천... 벼래별 곳을 다 다녀봤다.
력셔리하고 깨끗한 신라호텔 사우나도 너무 좋지만, 세월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네 사우나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특히 사우나가 잘 관리되는 곳이라면, 괜한 애정이 샘솟는다. 요즘 일주일에 한번씩 사우나 가는데, 오늘은 기린온천에 몸을 담가보기로 한다.
물
일단 온천이니, 물이 중요하겠지.
알칼리성 온천수라는데 탕에 들어가니 듣던대로 물이 미끌미끌하다.
근데 나는 온천물에 대해선 잘 모르고, 탕속에 물이나 부유물이 두둥실 떠다니는 건 눈에 잘 들어온다.
아침에 와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도 물이 깨끗하다.
잘 짜여진 동선
전체적인 동선이 좋다.
오성급 호텔 사우나도 입장해서 옷 벗고 탕에 들어가기까지 우왕좌왕하게 되는 동선 꼬인 곳이 많다.
그런데 이곳은 아주 직관적이다. 있어야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보면 쓰레기통이, 수건이 필요해서 보면 수건이, 세면대, 선풍기...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다.
아, 샴푸, 린스, 비누는 하나도 없다. 그건 기대하지 말자.
레트로 갬성
탕에 들어서니 크게 적혀있는 문구가 나를 반긴다.
"목욕도 보약입니다"
열탕, 온탕이 꽤 넓고, 냉탕은 무려 수심이 1.1m로 아주 깊고 넓다.
냉탕에 아이들이 빠질까 걱정인지 주인장이 친절하게 크게 적어두었다.
"어린 아이들은 혼자 두지 맙시다."
철저한 직업의식이 돋보인다.
평일 아침 9시 여탕의 모습.
이곳 저곳 여행 다니다보니 나라와 장소에 따라 목욕탕 매너가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수건으로 가리거나 가운을 많이 입고 있다. 그런가하면 독일의 바덴바덴 혼탕에서는 모두 다
발가벗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옷을 벗을 때는 모두 1인용 탈의실에서 벗는다.
벗은 모습은 보여주지만, 벗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본 온천에서도 수건으로 몸을 가린다. 골프장 클럽하우스 사우나에선 가운을 입는다.
여기 이 곳은....
무슨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줄 알았다.
탕의 문을 열자마자, 모두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건식과 습식 사우나가 하나씩 있다. 건식 사우나 바로 앞에는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 나가는 곳에도) 천장에 긴 줄이 하나 달려있는데 이걸 잡아당기면 마치 핀란드 사우나처럼 찬물이 레인샤워기에서 쫙 떨어진다. 상쾌한 구성이군. 그 옆에는 정체불명의 '수면방'이 있었다. 그 곳의 문을 열자 조금 시원한 온도였고, 사람들이 계란을 까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탕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본다.
저 멀리 목욕탕 코너에는 세신사 아주머니 두 분이 열일 하고 계셨다.
두분 모두 화려한 브라자와 팬티를 입고 계시고, 귀걸이와 목걸이도 걸치셨다. 또한 머리에는 두건을 둘러 '나 세신사요!' 하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두 분다 누워있는 손님을 응대하고 계셨는데 한 손님은 오이맛사지를 신청했는지, 기다란 오이를 강판에 갈고 계셨다. 아, 저기 침상에 누워 시원한 세신 서비스를 받고 간 오이로 마사지를 받는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이 들까. 참고로 TMI, 난 한평생 세신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의 첫 세신사를 꼼꼼히 고르고 있다.
목간을 마치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역시 쿨하게 스킨, 로션, 무스.. 같은 건 절대 없다.
머리를 말리려고 보니 이런 드라이가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100원을 넣으면 2분간 작동하는 그 기계, 바로 그것이 있다. 이것이말로 정말로 80년대 아날로그 감성!
하지만 이럴 줄 알고 이미 난 300원을 챙겨갔지. 후후
나의 선견지명을 칭찬할 수밖에 없군...
300원 = 6분은 말려야 내 머리를 말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원이나 50원은 넣지 마세요. 구부러진 동전 사용 금지
앗, 그런데 얼굴에 바르는 로션을 안챙겼네.
가방을 뒤져보니 썬크림이 있다. 비오는 흐린 날이지만, 썬크림을 크림 대신 바르기로 한다.
철저한 관리
그렇게 머리를 웽~~ 6분 말리자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진다.
대충 자리를 치우고 옷갈아입고 있다가 슬쩍 보니 와... 카운터에 있던 분이 내가 있던 자리를 깨끗이 닦고 있다. 와 이곳 모야... 관리가 호텔 수준인데 이거.
혜자 가격
이 온천의 가격은 1만원이다. 그래도 알카리성 온천인데 만원은 되야겠지.
더 놀라운 사실은, 온천을 쓸 경우 헬스장이 무료다.
이 온천의 2층에는 헬스장이 마련되어 있다.
보통 헬스장에 목욕탕이 딸려있던데, 여긴 목욕탕에 헬스장이 딸려있네.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건가?
거침없이 온천행!
사우나 마치고 나오는 1층엔 미용실이 있다.
다시 태어나고 싶으신가요? 기린 온천에 오세요.
2층 운동으로 몸과 마음의 땀을 흘리고,
알칼리성 온천수로 그 땀을 씻어내고,
헝클어진 머리를 미용실에 맡긴다면 전생을 잊고
당신은 이미 인생 2회차.
그렇게 싸우나를 마치고 나오면 커피를 한잔 마셔보자.
조금 걸으면 흔한 강릉의 카페 '안다미로'가 있다.
강릉의 펑범한 동네 카페 수준.
카페 안다미로
갑자기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혹은 조용하게 책을 읽고 싶으신가요.
바로 옆에 강릉교육문화관이 있는데 여기 도서관은 일하기도 책읽기도 좋은 곳이죠.
강릉교육문화회관 사이트 사진
아, 주차가 걱정이라고요.
걱정마세요. 여기는 강릉, 강릉입니다.
지하주차장도 아닌 넓다란 지상주차장이 곳곳에 무료로 있습니다.
기린온천에도, 카페에도, 도서관에도 모두 무료 무료, 주차의 향연.
휴...
강릉 왤케 살기 좋냐.
이상 전세계를 돌아다녔지만
강릉이 참 좋은
강릉 개굴의 고향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