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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ul 01. 2017

[세비야] 세비야의 밤은 깊어

* 이 여행기는 대기업 시절, 계속되는 폭풍야근으로 탈모에 돌발성 난청까지 생기게 되자 이직을 결심하고 떠났던 여행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세비야에 있다.

유스호스텔에서 주관하는 나이트 투어는 허리에 복대를 단디 두르고, 카메라를 들고, 세비야의 명물이라는 히랄다탑과 성당, 강변의 야경을 둘러보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밤 11시 호스텔 1층 로비에서, 남방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검은 색 양말에 흰 운동화를 신고 보무도 당당히 나이트 투어에 따라나선 것이다.



한 10명 정도 모였나.
미국, 프랑스, 스페인,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이 왜 레오파드 복장을 하고 있는지, 왜 그들의 훌륭한 피지컬을 맘껏 뽐내고 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하의실종에 하이힐이라니... 여행 초짜군. 후후...' 속으로만 그들의 복장에 코웃음을 치면서. 그때는 나이트 투어라는 것이 밤 새애~~애도록 이 클럽, 저 클럽, 물 좋은 클럽을 찾아다니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_-;;

그렇게 나는 멋도 모르고 세비야의 뜨거운 클럽 순례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취기가 살짝 오르고 시시각각 바뀌는 조명발 아래서 혼자 한국판 막춤을 선보일 무렵, 여기저기서 다른 일행들도 끼어든다. 술 기운과 사이키 조명으로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간다. 그 와중에 수학여행을 온 듯한 보송보송한 유럽의 젊은이들이 언뜻 보인다.


위 아래 위위 아래 아래!


“유 아 프리티~ 유 룩 투웨니투”
"아임 인 유어 마더즈 에이지"

그렇게 클럽의 사이키 조명은 나의 팔자 주름을 가려주었다. 한국에서 듣기 힘든 칭찬의 인플레이션에 들뜰 대로 들뜬 나의 막춤 레벨도 높아졌으나, 춰도 춰도 세비야의 클러빙은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나 하면, 어느새 다른 클럽으로, 이젠 가겠지 하면 또 다른 클럽으로....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
졸리고 지쳤지만 혼자 세비야의 밤거리를 뚫고 돌아가기에 나는 너무 심약했다. 붉게 충혈된 눈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너희들, 안 졸리니? 혹시 호스텔로 돌아갈 사아~~람!?"
하지만 내 질문을 듣는 둥 마는 둥, 내 앞에서는 이런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

.

레오파드 소년 소녀들


그래, 너희들은 철도 씹어먹을 이십대지, 참.

나도 마음은 너희들과 비슷한데, 육신은 늙었고, 무엇보다 너무 졸린다. 누군가는 나이드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했지만, 피천득이 말했나. 인생이 육십부터라는 얘기는 사실 인생이 육십까지라는 소리라고. 나이까지 먹고 지혜롭지도 않으면 안 놀아줄까 봐, 관대한 척, 현명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돈 말고 마음의 관대함으로 치자면, 내가 가장 관대했던 시절은 스무살 때였던 것 같다. 지친 나는 스테이지의 어느 구석에 앉아 아이들의 사진이나 찍어댔다. (ㅠㅠ)


사진 밖에 쭈그리고 앉아있음

몇시에 숙소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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