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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피스N Jul 06. 2018

매일 팀장에서 대표로 고속 진급하는 남자의 정체

굿피플 : 벨라&청아&미음&썸띵/문상철/대표

한 평범한 직장인이 있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이면 TV를 보거나 공원을 걸으며 여가를 즐겼다. 그렇게 정적으로 살던 그가 34살에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바로 편안함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다. 이는 4~5년차의 직장인이라면 겪는 현상으로, 내가 여기를 계속 다녀야 하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때 두 가지 선택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안정 그리고 도전.

그는 후자인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멋진 사표 제출’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상은 막무가내 사표 제출이었다. 아무런 정보나 미래의 준비 그리고 체계적인 계획 없이 창업이라는 단어만 꺼내서 퇴사했으니까. 그렇게 무모한 도전은 시작됐다. 그 결과, 계약 당일에 건물주에게 취소 통보를 받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만둘까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버텼다. 끝까지 버텼다. 그렇게 여러 번의 값비싼 수업을 들으면서 성장했고, 현재 두 개의 영리 사업체와 두 개의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며 수원시 도시 재생 및 마을문화 활성화를 만들고 있다. 이제는 주민들 사이에서 지역의 일꾼(+아이돌)으로 불리는 문상철 대표를 만났다.
 

100여 명의 직장인을 만났지만,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봐. 현재 운영 중인 영리&비영리들을 소개해줘.

그럼 이제부터 하나씩의 연결 고리를 풀어볼게.

 처음으로 소개할 곳은 문화 카페인 ‘벨라’야. 이는 창업을 도전하고 첫 번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 커피 그 이상의 문화적 공간”이란 슬로건으로 음료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스토리가 월별 계절별 변화되는 곳이야.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작가들과 함께 공간을 변화시키고 교육 및 모임을 통해 문화가 꽃피어져.

그렇게 벨라를 운영하면서 지역 내에 여러 문화&예술인들을 알게 됐어. 마케팅회사에서 문화기획 일을 했기에 좋은 교류를 이어가자고 했고, 그분들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비영리단체인 ‘청아’를 만들었어.
여기서 한 가지의 중요한 고민이 생겼어. 바로 수익이야. 좋은 뜻으로 활동은 시작했지만, 재능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단체가 지속해서 이어갈 순 없어. 그래서 작가들의 콘텐츠와 재능을 금전적인 혜택으로 만드는 ‘썸띵’이라는 문화기획사를 만들었어.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비영리 문화기획 단체인 ‘미음’이야. 일하면서 많은 청년이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어 함을 알았어. 그들의 지원하는 취지에서 문화기획, 축제 운영 그리고 다양한 양질의 교육을 지원해.
이 네 가지는 도시의 문화 재생과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가치 있는 일이야.

인터뷰 전에 요즘 정말 바쁘다고 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겠네.
그럼 이런 일들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퇴사 후, 어떤 창업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했어. 사무직으로만 일한 내가 아무 기술 없이 창업하는 것은 어렵겠더라고. 그래서 현재 사업 중인 지인을 찾기로 했어. 때마침 외국인 친구가 송탄에서 브라질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어서 함께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렇게 하나둘씩 배워가면서 오픈 준비를 해갔지.

그리고 3개월 후, 운영 부분과 브랜드 설계, 고객 설정 등 사업에 필요한 부분을 잘 준비했고, 원하는 상권과 위치를 선정해서 입주할 준비만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계약 당일 날, 건물주가 계약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전날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인지도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오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일방적으로 취소하신 거지. 외국인 고객을 주 고객으로 삼았기에, 외국인 바이어가 많은 그 장소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하기는 무리가 있어.



타격이 엄청 크겠다. 이래서 돈이 오가는 계약은 무조건 서류로 준비하라고 하는구나.
그럼 레스토랑을 접고 카페를 한 거네?

맞아. 레스토랑은 접기로 하고, 바리스타 경험이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벨라’ 카페를 준비했어.

다행히 오픈까지는 잘 진행됐어.


까지는? 뭔가 문제가 터질 거 같은 느낌인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사장이라는 위치지만 하나씩 배워가는 단계였어. 그러다 보니 직원보다 모르는 게 많아서 문제가 하나 둘씩 발생하더라고. 결국 서로의 이해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당하는 큰 문제가 생겼지. 이는 내 큰 실수기도 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월급을 전달했으니까. 나는 오히려 돈을 더 줬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아니었던 거지.

그렇게 큰 수업료를 들이면서 열심히 카페를 운영했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네. 이래서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야.
그렇게 운영하면서 영리&비영리 단체를 시작한 거야?

그사이에 한 가지 일이 더 있어. 좋은 멤버들과 카페를 운영하던 중, 다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내게 적합한 포지션이 있는데 합류해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하는 일도 인정해준다고 해서 회사 일과 병행하기로 했어.



잠깐, 회사에 다니면서 영리&비영리 단체를 운영한다고??? 그럼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돼?

응. (웃음) 앞서 소개한 미음을 함께 진행 중인 회사야. 하루 스케줄은 오후까지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 수원으로 넘어가서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 또는 공모전을 준비해.



근데 정말 회사에서 이런 활동을 이해해주셔? 그렇게 좋아할 것만 같지는 않은데?

솔직히 반반이야. 최대한 업무 시간에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욱 균형을 맞추려고 해.



나는 여태까지 영리사업체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났어. 그렇다 보니, 비영리단체에서는 진행 구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을 해. 많은 기관에서 비영리단체와 연결된 업무가 있어. 거기서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획에 참여해달라고 요청을 받아.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분야인지 회의를 거친 다음에 진행 여부를 판단해.

패밀리 쿡스데이  

그럼 주민 삶의 질을 높였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야?

올해 초 지인으로부터 <정치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어. 박원순 시장과 오연호 기자가 나눈 서울시 행정과 정치에 관한 스토리. 여기서 ‘자녀들과 주말에 축구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내용이 엄청 와 닿았어. 모두 가족의 소중함을 알지만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지 못하거든. 그래서 초등학교 운동장을 대관해서 패밀리 쿡스데이를 열었어. 아빠는 아들과 축구를 하고, 엄마는 딸과 요리 클래스를 그리고 함께 식사하면서 하루 동안 문화를 즐겼어.

이 과정이 담긴 영상이야. 콘텐츠 제작자로서 힘듦보다는 뿌듯함이 앞선 결과물이었어. 이는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한 모두가 느낄 수 있어서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아.



이게 영상의 힘인 거 같아. 진행자는 전체 상황을 보기가 힘들잖아. 근데 영상으로는 어떻게 진행됐고, 참여한 분들의 표정까지 볼 수 있으니까.
그럼 혹시 벨라에서 이뤄진 결과물은 없어?

벨라를 통해서 알게 된 캘리그라피 작가분이 첫 전시회를 카페에서 열었어. 작가분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주민은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을 전시회를 알게 된 사례야.

그리고 전시회를 통해 수익 일부를 사회 공헌으로 기부했어. 이 사례가 주민 센터에 알려지게 되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해 율천동이 경기도 복지대상을 받는데 작은 도움을 줬지.

오~축하해! 이렇게 수원시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활동하면,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

정말 감사하게도 좋은 활동하는 인상 좋은 사장님, 우리 지역의 아이돌이라 불러주셔. (웃음)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서울에서의 활동은 경쟁, 성공, 이윤추구에만 치중된 삶이었는데, 내가 사는 마을에서 이런 활동을 하면서 나눔, 공동체, 협동, 협치와 같은 단어에 정감이 가. 

일과의 병행이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이 보람됨을 느끼고 싶어.

그렇지. 비영리 단체를 영리 단체와 연결한다고 하지만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까.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야?

청아는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화적 공유 가치라는 목적을 가져. 그 활동의 종류는 정말 다양해. 나는 이게 우리의 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함께 하는 멤버에게는 불만으로 커졌어. 왜냐면 자신의 분야를 진행하지 못할 때도 있거든. 그러다 보니 불만이 생기고 불평이 생기면서 나에게 온전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돌아오더라고.

이해는 했지만, 정말 큰 상처가 됐어. 나 역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애정을 가지고 활동했는데 비판적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니.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

무의미한 활동인가? 그만둬야겠다…

긴 고민 끝에 해결 방법을 찾았어.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방법과 리더의 역할을 같은 위치에서 함께 만들기로 했어. 그렇게 A부터 Z까지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그들을 리더로 만들었어. 그리고 나는 옆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하니까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오더라고.

그렇지. 사실 앞에서 진행하지 않으면 그 상황을 모르고, 오해를 살 수도 있어. 그리고 이런 구조는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게 돼.

맞아. 좋은 활동을 만들기 위한 비전도 다시 세웠어. 혼자만의 리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리더가 공공의 목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그들의 눈으로 무엇이든 각자 하고 싶은 것, 해결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는 작은 단위의 마을 문제를 해결해가지만 구 단위 그리고 시 단위로 범위를 넓혀 갈 거야.



‘열심히 해라’와 같은 희망 고문의 조언은 가라! 그가 말하는 이유 있는 조언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계속 찾을 수 있다.
반대로 된다고 생각해도 그 이유는 찾을 수 있다.

 

나는 퇴사 후,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에베레스트에 갔어. 퇴직금으로 16박 17일의 여행길을 떠났지. 벨라도 거기서 이름을 따온 거야. 그렇게 갔다 오니 당연히 사업 자본금이 없었지. 그래도 제로에서 시작할 순 없기에 창업 자금을 모을 방법을 생각했어. 소상공인 지원자금 및 대출자금 총 육천만 원을 만들고 부족한 금액은 주변 지인에게 빌리고 카드 한도를 늘리고 늘리는 방법으로 자금을 모았어.


시작부터 수익이 있어야 했기에 정말 카페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열심히 일했어.

운이 좋게 첫 달부터 흑자운영이 되더라고. 이처럼 궁지에 몰려도 뭐든지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방법은 찾을 수 있어. 이 마인드를 꼭 가졌으면 해. 뻔한 조언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를 경험했기에 꼭 말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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