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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피스N Aug 06. 2018

내 스펙은 오직 리니지뿐

엔씨소프트 리니지 개발실 기획 1팀의 수장이 된 김효수 팀장


‘게임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 엔씨소프트에는 영화 뺨치는 인생 스토리를 가진 분들이 많은데요, 그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리니지가 너무 좋아서, 리니지를 열심히 하다가, 엔씨소프트 리니지 개발실 기획 1팀의 수장이 된 김효수 팀장입니다.


이 무슨 영화 같은 이야기냐고요? 실제 그의 삶은 더 영화 같습니다. “나를 키운 팔 할은 리니지”라 말하는, 김효수 팀장의 <미생> 뺨치는 청춘 스토리를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 제대했어? 그럼 알바 해~ 


때는 2003년. 김효수 팀장은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2년 동안 못 한 리니지 이제 실컷 해야지!’ 이런 기쁨과 해방감도 잠시.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빡빡 민 머리가 채 자라기도 전에 생활 전선에 뛰어 들게 되었다. 취미도 리니지, 특기도 리니지. 할 줄 아는 거라곤 리니지 밖에 없던 김효수 팀장은 드넓은 알바 시장에 내던져 졌다. 친구들이 부모님이 준 용돈으로 PC방갈 때, 김효수 팀장은 PC방 카운터를 지켜야 했다. 오로지 생계를 위해!



“그땐 뭘 재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어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죠. PC방에서 카운터 보고, 택배 회사에서 타이핑 치고, 현수막 걸고, 백화점 행사도 뛰고…그렇게 한 4~5개월을 알바 두 탕씩 뛰면서 생활이 좀 나아지고 나니까 ‘그럼 이제 나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리니지 만드는 회사에 가고 싶습니다



취업. 목표는 일단 취업이었다. 김효수 팀장은 가고 싶은 회사를 엑셀 표로 정리했다. 위치, 연봉, 주가, 우대 조건, 장래성 등등. 회사 별로 여러 항목들을 쫙 정리해 놓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하다 보니 엑셀 칸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위치? 젊은 데 좀 먼 데로 다니면 어때. 연봉? 주는 대로 받지 뭐. 우대 조건? 내가 우대 받을 조건이란 게 있나…(잠깐 눈물 좀 닦고ㅠ_ㅠ) 분야? 무조건 게임!! 리니지 짱! >ㅁ< ⇒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조건과 상관 없이 반드시 가고 싶은 회사는 딱 한 군데뿐이었다.


“리니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했고,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었어요. 그때 마침 리니지에서 만난 분이 엔씨에 입사했는데, 회사가 진짜 좋다는 거예요. “엔씨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쪽으로 지원하는 게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은 그릴 줄도 모르고, 코딩도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웃음) 막막한 상태로 게임 업계 리쿠르팅 사이트를 뒤지다가 운영 쪽에서도 사람을 뽑는단 걸 알았죠.”



# 가장 낮은 데로 임하소서


김효수 팀장이 당시 면접을 보러 간 곳은 리니지 고객들의 불만을 접수하는 대면 센터였다. 리니지라면 자신 있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탈락 사유는 “당신은 너무 하드코어한 플레이어라서”였다. 이렇게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 다시 엔씨소프트의 문을 두드린 곳은 모니터링 부서였다.


“전 그냥 엔씨소프트에 가야 했어요. 월급 안 줘도 상관 없었어요. 이런 발언 좀 위험한가?(웃음) 외부 업체를 통해 채용되는 파견직이었는데, 면접 보고 결과 기다릴 때까지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합격 문자만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눈치 없이 ‘야, 게임이나 하자.’ 하고 문자 보내면 전화해서 욕을 하기도 했어요. ‘합격 문자인 줄 알았잖아 이 XX야!’! 하면서요.(일동 웃음)”


어쨌든 결과는 합격. 2005년, 김효수 팀장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엔씨소프트에 입성하게 된다. 당시 모니터링 부서는 3교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는데, 매일 12시간씩 모니터를 지켜보며 채팅 창에 공지 글을 올리고 고객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게 그의 일이었다. 파견직에, 최저 시급을 받는, 회사에서 “가장 낮은” 직군. 당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첫 출근을 했는데 사무실 맨 끝에, 모니터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예요. 그 자리가 제가 근무 해야 될 자리였어요. 그냥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자리었지만 ‘리니지 운영팀’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마냥 자랑스럽고 좋았어요. 왜냐면 저는 요즘 말하는 스팩이 전혀 없었거든요. 리니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거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 세운 목표는 하나였죠. 뒤에 계신 선배님들처럼 내 자리를 갖는 거요.”

 


# 리니지, 너만 있으면 돼


매일 모니터만 들여다 보는 일에 싫증이 날 법도 한데, 김효수 팀장은 그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 추억한다. 특출 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직군도 아니고, 좋아하는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김효수 팀장은 리니지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모니터링은 소명 의식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죠.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좋았어요. 동기들이랑 친해져서 매일 어울리며 ‘오늘은 뭐 하지?’ 궁리하는 것도 즐거웠고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도 뭔가 해 보려고 열정을 불태운 시기였어요. 게임 내 트렌드 보고도 틈틈이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진짜 열심히 했어요.”


당시 주위 지인들이 “미친 거 아냐”라고 할 정도였다. 회사에서 12시간 꼬박 모니터링을 하고 집에 오면 밀린 숙제를 하듯이 2시간 이상 게임을 하고 잤다. 누군가 “너 왜 그렇게 게임을 해?” 하고 물으면 “(게임) 해야 돼. 그리고 나도 하고 싶어.”라 대답했다. 그 열정의 동력은? 두말할 것 없이 리니지였다.



# 시간은 날 배신하지 않아


김효수 팀장은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을 ‘시간 투자’라 말한다. 가장 낮은 직군이라는 모니터링 부서에서 1년을 보냈고, 리니지 토너먼트 부서에서 1년을 보낸 뒤 리니지 QA팀으로 옮겼다. 파견직에서 계약직으로 대우도 달라졌다. 아직 게임에 손댈 수 있는 권한이 많진 않았지만, 권한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QA팀으로 옮기니까 모니터링 할 때와는 다른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리니지를 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지더라고요. 주말에도 회사에 가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일할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으니까요. 모니터링 시절엔 열정만 있고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는데, QA팀에서는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실행 권한이 생긴 거예요.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생긴 기분이었죠.”



QA팀에서 2년을 보내고 게임의 재미를 분석하는 FQA부서를 거쳐 정규직 채용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기획 팀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동안 리니지를 하며 쌓은 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정규직 채용을 코앞에 두고 부서를 옮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팀원들의 만류에 다가온 기회를 덥석 잡을 수는 없었다.

“정규직이 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잖아요. 리니지 기획 팀에 가고 싶다는 욕망은 그 다음이었어요. 정말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죠. 일단은 꿈을 접은 채 묵묵히 일만 했어요.”


 


# 마침내 도달한 리니지 기획 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기획 팀에 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김효수 팀장에게 또 한 번의 면접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팀장님 집 앞까지 찾아가서 기획 팀에 정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간절한 마음이 통해서 부서를 옮기게 됐죠. 기획 출신이 아니라 다시 막내가 된 상황이었는데, 막내 업무를 하면서 당시 문제가 발생한 리니지 내 사냥터를 조사하는 일을 맡았어요. QA 시절부터 눈 여겨 봤던 사냥터라, 그 동안 조사했던 내용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기획 팀에 뿌리를 내렸죠. 그 후로도 사냥터 리뉴얼, 클래스 케어등 많은 업무를 진행하고 나니 팀장까지 맡게 되었어요.”

 


# 리니지가 항상 내 곁에 있었어


파견직으로 시작해 기획 팀 팀장이 된 김효수 팀장. 지금도 청춘이지만, 지나간 그의 청춘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10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매 순간 몰입하다 보니 ‘이게 정말 내 길이 맞나?’하는, 20대에 흔히 찾아오는 사춘기도 비껴갔다. 그가 엔씨소프트에 청춘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리고 팀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그만의 비결은? (이제 다들 예상하시겠지만..예상하셨던 바로 그 답 나갑니다..) 첫째도 리니지, 둘째도 리니지였다.



“리니지는 배신을 하지 않아요. 리니지 때문에 살면서 고마운 일이 정말 많았어요. 제가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 계속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거, 모든 기반이 리니지예요. 전 다른 게임은 잘 모르지만 리니지만은 잘 알아요. 리니지만 놓고 보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김효수 팀장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준 이유도 단 하나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리니지가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이 정도면 거의 부모의 마음 아닐까?



“리지니는 제게 있어 동료이자 친구, 스승이자 자식 같은 존재예요. 제 개인사는 사실 특별할 게 없어요. 그냥 리니지가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제 삶의 많은 동력이 리니지로부터 왔어요. 전 ‘유저’라는 말을 잘 안 써요. 저희가 만든 게임을 즐겨 주시는 분들은 유저가 아니라 ‘고객’이죠. 이 자리를 빌어 리니지 고객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만약 리니지가 없었다면 전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갑갑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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