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싫은 해야 한다거나 불만스러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면
사람의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실존적 경험들로부터 비롯된다. 요즘에야 여기저기 동기부여 책들과 영상들이 쏟아지지만 그 본질에 대한 것은 정말이지 엄마로부터 생생하게 학습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터 숱하게 듣던 "말이 씨가 된다"
어쩜 엄마는 60대가 되어서 이런 초인적인 집안일과 아이들케어까지 백업해주는데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할 수 있는지 언젠가 물었더니 "왜 안힘들겠니. 하지만 어차피 할 일들이잖니. 어차피 할 일들을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니 생각을 바꾸는거야. 어차피 내 할 일들이다. 이왕 하는 것 주도적으로 신나게 하자고 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한 게 아니야 결국 날 위한 거야"
말은 힘과 기운을 갖고 있다는 것,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그것을 수용하고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강구하는 것
그 과정에서 어차피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주체로서 상황에 임하는 것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도없이 말했지만 어린 나는 그것이 다른 누가 아닌 엄마의 말이었으므로 가벼이 흘려들었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혹은 세뇌되어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내게도 이로운 생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엄마는 최근 느닷없는 골절로 3개월 칩거생활에 준하는 생활을 해야 했는데 엄마는 "이만해서 감사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이어서 너무나 다행스럽다."고 했다. 불운을 만날 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날 때 내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해석해야 할 지를 돌아본다.
40대에 진입한 나는 번번이 만나는 육체적 심리적 힘든 상황에 쉽게 무너지고 불평한다. 그리고 문제의 중심을 상대에게 두면서 타자화 하고 그 대상을 탓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하는데 그러고나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질 리는 없다. 집에 와서 아이를 만나고 필요한 일들을 챙기고, 나보다 경직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배우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내가 더 많은 멀티태스킹으로 내 뇌에 과부하가 걸려 감정조절이 안될때 조차도 '어차피 할 일이면! 생각을 바꾸자!'라고 소리내어 읊어본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