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가 자꾸 생각나서 선택이 주저된다면
64세 닭띠인 57년생 엄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남녀차별을 온몸으로 관통하던 시대에 그것도 지방 산골에서 태어났으므로,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못한 채 나아가 없는 집에 결혼한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의 장년여성이다. 따라서 남들 다 한다는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에 대한 안목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것에 관심을 두며 살아오지 못했던 터라 언제나 빠듯한 살림을 살아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재산도 물려주지 않은 엄마가 툭하면 내가 주저하는 결정을 할 때 마다 "버리기 가장 쉬운 게 돈이다. 돈이 문제라서 고민이 된다면 돈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필요한 결정을 해라"고 일침을 가한다.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야 돈을 좀 버리고도 아깝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지만 제한된 자원에서 셈하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 아니 어찌 버리기 쉬운 게 돈이라니!! 인플레이션을 예감하셨던 것일까..흠..
나 역시 가진 것 없는 파트너와 만나 서로 0에서 각자 최선의 고군분투로 아껴가며 살림을 살아가던 와중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의 성향에 맞게 키워야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은 서울이 아닌 경기권이었고 그 중에서도 그닥 교육열망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열망은 가득하나 전형적인 내성형의 아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그룹 속에서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특성이 있었다. 우리의 64세 박여사께서는 아주 예민하고 관찰력이 좋은데, 첫째 아이를 주로 맡아 키워주신 터라 그 아이의 특징에 맞게 6세 유치원으로 보낼 때는 소수케어가 되는 곳으로 보내는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동네 어린이집에 4,5세 보내고 있었고 대부분 6세에는 일반 유치원으로 보내는 터라 다들 가는 유치원으로 가야지 하는데 유치원은 한반에 2~30명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알아보다 보니 영어유치원이라는 곳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영어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는 데 코웃음을 치던 때였으므로 편견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아주 십수년 영어유치원을 하는 덕망높고? 몬테소리 교육방침을 결합해 운영하는 원장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상담을 한번 갔다. 20분 상담을 예정하고 갔는데 두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오면서 나는 커리큘럼이나 이런건 전혀 알지 못하고 이 원장님이라면 아이의 특성에 맞게 내향적인 아이도 세심히 케어받고 즐겁게 다닐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고 온다. 그러나 한달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책값 등 부대비용을 포함하니 당시 209시간 풀타임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 주를 고민하게 된다. 당시 육아를 하며 가늘게 경력을 유지하던 나로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적절한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그렇다면 다른 좀더 저렴한 곳을 알아봐야 하나 몇번 추가 상담에 이른다. 수 주 고민하며 갈피를 못잡고 있는 갈팡질팡 내 생각을 엄마와 나누다 박 여사께서 당시 "결국 돈만 아니라면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거네? 그럴때는 돈을 버리면 된다. 보내면서 돈이 얼만데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라. 버린다고 생각하고 보내라. 가장 버리기 쉬운 게 돈이다!"는 아직도 충격에 사로잡힐만큼 놀라웠던 일침을 하신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일침에 묘하게 설득되는 것이다.
엄마는 추가로 내게 더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전문성을 키우라며 갑자게 내게 불똥을 튀어 자극하셨다. 엄마는 "내가 내 새끼 일하라고 아이 봐주는 것"이라는 분명한 노선이 있으셨으므로. 물론 그로부터 몇년간 지속하여 나는 근심 걱정으로 개업을 해도 되는지,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불안과 싸우는 시간이 있었으나 당시 엄마의 '버리기 가장 쉬운 것은 돈'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수용해서 돈만 아니라면 응당 선택하겠다고 고민했던 그 유치원을 보냈고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그 돈을 주며 영유라는 곳을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가 학교에서 뭘 배워오는지 책은 어떤 책으로 하는지 등등은 전혀 알지 못했고 챙겨주지도 못했으며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에만 도취되어 매우 만족했단느 후문이다.
설사 결과가 기대만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는 안다. 가성비가 아니라 돈만 아니라면 그 선택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정도의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정말 돈을 버린다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게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한 선택이었어야 후회가 없고 좋은 결과를 마주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엄마의 경제관과 행복론인 "남한테 손 안벌리고 스스로 자립하여 살면 된다"는 기준에서 유유자적중이신 60대의 그 기준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나는 더 윤택해지리라는 다짐이겠지!) 엄마의 저 철학은 선택할 때 지혜로운 리트머스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