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손해 봐도 된다"

관계에서 조차 셈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여긴다면

by 모먼트

공정성이 화두인 상황에서 손해 입는건 공정하지 못한 일을 당했다고 해석하기 십상이다.

실제 살아가면서 뭔가 찜찜하거나 억울한 일들은 숱하다.


스물두살쯤 취업 시험 준비를 함께 하던 친구들과 김상수 영화를 보러 갔다가 누군가를 만나는 모임에 지갑을 일부러 가져 가지 않아 겸연쩍어 하는 장면을 보고나와서 한 친구가 "야, 저런 방법이 있네! 지갑을 안갖고 나왔다고 하면 되네! 누가 밥값을 내고 싶겠냐 "라며 감탄하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장면이 기억나는 것은 그 발언의 솔직함 때문이었다. 아, 그렇지 서로 체면을 차리지만 자기 지갑에서 돈 내는 걸 누가 좋아하랴. 누군들 아끼고 싶지 않겠나.


대학 동기 중 유난히 좋은 옷만 차려입는 친구가 어딜 가면 그렇게 5백원만 빌려달라거나 짠돌이 티를 내서 원성을 사기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모두 손해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내 것을 손해보지 않는 것이 곧 이익이라는 셈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촐하게 시작한 개업 초기, 일은 없고 시간은 많은 초기에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가 많았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이라도 할라치면 아직 잘 벌지도 못하는 형편에 꼭 먼저 계산을 하고 만다. 그리고는 이내 꼭 내가 안사도 되는거였는데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57년 닭띠 박여사께서는 껄껄 웃으며 "크게 손해 보는건 곤란하지만 조금은 손해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게 꽤 안심됐다. 내가 셈을 못해 어리석거나 야무지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여사 증언에 따르면 그 옛날 형편이 어렵고도 어려운데 박봉을 받아온 아버지가 젊은 취기로 술값으로 박봉의 월급마저 날리고 오는 사람이라는걸 주변 가까운 이웃들마저 익히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엄마가 어딜 방문하거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 늘 빈손이라고는 없고 박카스한통이라도 건네는 것을 보고 "어쩜 그런 형편에서 그렇게 도리 하며 사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소년때, 청년기때 엄마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도 정작 엄마의 작은 호의를 받았던 사람들(밥 한 끼, 정다운 말 한마디 등)이 수십년 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고마움을 전해 오는 것을 옆에서 본다. 엄마도 말한다. "나는 기억조차 안나는데 내가 그때 그랬나봐, 당시에는 여자가 밥 사고 술 사는게 있기 어려운 시대였는데 내가 결혼전에 알던 남자 친구들에게 술을 사준적이 있었거든 내가 일 하니까 사주겠다고. 그게 그렇게 신기했나보다. 그리고 오래전 시조카 동생이 그 시골에서 소풍 김밥 한번 못 싸갔다는 걸 알고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신혼이었을 때 새벽에 김밥 싸준걸 두고두고 고맙다고 하니 좋은 마음으로 나누는 건 괜찮다. 손해 보는 것 아니다"고 이야기 한다.


당연히 더치페이가 말끔하고 쟤는 되고, 나는 왜 안되냐며 손들어 주장해야 손해 안본다고 배워온 세대들에게는 생경할 수 있을 것이고 너무 미화된 이야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나도 조금 나이들어 보니 어렴풋하게 그런 의미였구나 깨닫게 되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좋은 마음으로 내가 조금 더 쓰고 내가 조금 더 양보하는 게 결국엔 손해도 아닐뿐더러 어쩜 더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산술적 계산으로는 잘 셈이 안되나 우주적 기운의 계산이 있는 것이다.


박 여사의 "조금은 손해 봐도 된다"의 전언인 "많이 손해 보는건 안되지만!"에서 역시 대의명분을 부르짖지는 못하거나 안하는 소시민의 균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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