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이루어야 행복해지는가를 묻는다면
직장인이라면 직급이 올라갈 수록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스트레스를 알거나 예상할 수 있다.
나의 배우자는 직장인으로 나의 안위를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닌 조직 내 관계와 평판과 의사결정자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어쩔 수 없이 처분에 맡겨져 놓은 처지'라는 스트레스를 상시 받고 있었다. 나는 조직을 연구하고 조직 내 문제를 다루는 전문직역 종사자이나 직장인과는 다른 자영업자이므로 그런 스트레스는 애초에 카테고리에 없다. (직장인의 예상되는 그 불안과 고통스러운 스트레스를 지레 겁먹고 그렇게 살지는 못하겠다는 선택을 일찌감치 해서 진로를 선회한 것이기도 하다)
57년생 박여사는 "마음 편한 것이 행복이다" 라는 인생관을 갖고 있다. 뭔가 이루어야 한다고 전전긍긍대거나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막연한 걱정으로 불안에 휩싸였을 때 우리 박여사께서는 "너무 욕심 내지 마라, 아무리 큰 부자여도 세 끼 먹고 사는 것은 다 같다. 마음 편한 것이 최고다"라는 마음평화주의를 내세운다. 이런 태도는 급기야 내 배우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에 화답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남편은 직장 내 관계의 스트레스, 그 관계속에서 내가 주도적일 수 없는 위계간 조직정치의 부담, 모든 행동에는 리스크가 수반되는 데서 오는 제한된 조직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중적으로 호소하고 그것에 대해 나마저 '어쩌라는건가'하는 심드렁한 마음이 삐죽 튀어나올 때 엄마는 여느 주말 술자리에서 "사람이 한 번 사는데,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살면 어떡하냐. 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 그렇게 마음이 못견디겠으면 딱 털고 나와라. 처자식 걱정되서 그러나본데, 리어카를 끌어도 다 살 길이 있다.마음 편한게 최고다. 마음 편하게 살아라" 고 한다.
아니, 너무 감정적 발언 아닌가?!하고 그럴 수는 없다고 따져물었더니 엄마는 과거 30년 전의 이야기를 또 하신다. " 네 아빠가 직장생활로 상사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 하던 때 내가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 그 돈 없어서 못살지 않는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내가 펄펄 뛰며 그랬더니 오히려 네 아빠가 조용히 다니더라. 사위에게 그런 효과를 기대해서 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당시 내 마음도 진짜 그랬거든. 그렇게 사람 피말리는 공간과 관계를 버틸 이유가 있냐 이거지. 살자고 하는 거지 다 방법이 있다니까" 한다. 남편은 다행히(?) 허허 웃으며 "괴로운건 괴로운건데 그래도 남아 있는건 그래도 남아서 어떻게 기회가 있지 않을까, 이 어려움속에서 뭔가 성과를 내볼까 하는 나름의 마음도 있으니 쉽게 결정이 어려운것 같다"고 답한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 편한게 행복이다"라는 인생관은 여러모로 내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의뢰인과의 계약에서 좀더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내가 더 품을 들여 내 마음 편하자고 추가로 거드는 것, 갈등 지점에서 끝까지 부딪쳐 그것을 쟁취하고자 싸워 결국 얻고자 하는 마음 대신 적당히 양보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서 그 상황을 이해해서 내 마음이 편하게 되는 것, 자신할 수 없는 1등이라는 결과에 집착하는 것보다 오늘의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데 집중한다는 기준만을 만족하며 마음편히 사는 것. 이 모든 게 내가 진짜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는 선택들이다.